전에 무장 읍성에 대한 내용은 포스팅한 적이 있고, 고창읍성과 더불어 여행할 때 꼭 들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무장읍성의 매력에 빠지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호젓하고 사람도 없고 산책과 더불어 여유를 즐기기 그만이다. 무장읍성에 관한 다른 사진과 내용은 아래를 클릭하면 찾아볼 수 있다. https://jail6039.tistory.com/entry/동학-농민군의-진격로-고창-무장읍성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이다. 1991년 2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다. 무장읍성(茂長邑城)은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400m..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에 정상부에 있는 적성산성(赤城山城,사적 제265호)이다. 이곳은 조령(문경새재)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길을 지키는 산성이다. 남한강 북쪽에서 죽령을 향하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산성내에 가장 오래된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국보189호)가 있고, 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 전경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이 멀리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원주방향 상행선 단양휴게소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여행 중에 단양휴게소에 들르는 경우라면 한번 올라가 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아래의 자료들은 다음 위키백과를 참고 하였..
전에 온달산성과 적성산성에 관하여 올린 바 있는데 자료를 보강하여 다시 올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자료들은 다음 위키백과와 민속자료사전을 참고하였다. 온달산성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소재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산성으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산 정상 부근을 테처럼 둘러싼 산성)이다.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이 신라가 쳐들어오자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이야기와 관련되어 이름 불렸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신라 석축산성의 축성 방법이 확인되었고 신라 토기 등도 출토되어, 신라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산성은 해발 427m의 성산(城山) 정상부에 반월형(半月形)으로 축조된 테뫼식 협축(夾築) 산성이다. 성벽은 남고북저의 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남쪽 봉우리 ..
청주 정북동 토성(淸州 井北洞 土城)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성곽이다. 1999년 10월 28일 대한민국 사적 제415호로 지정되었다.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있는 평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만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궁예가 상당산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는데, 견훤이 산성을 빼앗아 정북동 토성으로 짐작되는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후삼국 쟁란기인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의 위치, 주변 여건이 초기 성곽시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675m이고 높이 3.5m, 폭은 8∼13m 정도 된다. 성안에서는 주거지, 기둥구멍, 길, 돌무더기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
보은은 속리산에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다. 그래서 속리산에 가려면 늘 보은을 거쳐서 가곤 했다. 물론 어느날부터 속리산 입구에서 택도 아니게 비싼 법주사의 관람료가 부당하다고 느껴지면서 발길을 끊은지 오래이긴 하다. 그리고 지금은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굳이 보은을 거치지 않아도 속리산을 갈 수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장료의 부당함을 알고는 보은쪽이나 법주사를 통해 속리산에 가기보단 입장료가 없는 상주방향에서 속리산을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에 뭐 속리산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던 것은 아니고 남쪽으로 하염없이 내려가다가 너무 졸려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보은 인근이어서 언젠가는 한번 가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삼년산성을 가게 된 것이다. 삼년산성을 처음보면서 느낀점은 그 성벽..
행주산성은 서울에서 매우 가까이에 있으며 자유로를 따라 일산이나 파주쪽으로 가다보면 늘 왼쪽 언저리에 보이곤 한다. 물론 행주산성 인근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고 이중의 몇몇 식당은 가성비가 아주 뛰어나기도 하다. 또한 어느 카페에 가면 커피한 잔 앞에 놓고 노을 구경하기 아주 좋은 곳이 있어 한번씩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만 행주산성은 아주 작다. 또한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처럼 거나한 성문도 성벽도 없으며 단지 이곳이 토성임을 보여주는 흙무더기만이 몇군데 이어질 뿐이다. 어쩌면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을 상상했다면 지극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남한산성이 인조의 항복으로 굴욕의 장소가 되었다면 이 행주산성은 우리의 위대한 승리와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이란 의미에서 아주 소중한 유적..
북한산은 작은 산이 아니다. 남한산성처럼 안으로 버스가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산세 또한 매우 험하여 성벽을 따라 전구간을 걷거나 하기도 매우 힘들다. 어차피 성문 중의 일부는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바로 코앞에 있으니 산성 탐방이라기 보단 그냥 등산을 한다~ 생각함 될 것이다. 그래서 산성만의 탐방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안그럼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선수가 아닌 이상 무심코 여타 다른 산성이나 성곽을 생각하고 슬슬 걷겠다 생각하며 북한산성에 달려들면 식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루에 북한산성의 성문을 다 탐방하기보단 이틀에 나누어 여유있게 탐방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또한 다른 국립공원 주차장과 다르게 일 정액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온종일 주차 했다간 주차요금의 압박을 심하게 느낄 수도..
단양의 온달산성이 그렇듯 지리적으로 이런 곳에 산성이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산성에 올라서니 찾는이 하나 없는 듯 휭하니 부는 바람만이 반기고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려는 듯 여기저기 한때는 성벽의 일부분을 차지하며 그 위용을 자랑했을 법한 돌무더기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그 오랜 세월 잘도 견뎌주어 고맙고 다시 과거의 영화를 찾으려는 듯 일부에서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 지고 있으니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정양산성은 영월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면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영월을 발아래 두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인근의 태화산성, 완택산성, 대야성 중 우두머리에 속하는 주성에 해당되는 고산성으로 왕검..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충남 서산시 해미읍에 있는 옛 읍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해미읍성 전통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 역사 중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1417년(태종17년)축성을 시작하여 1421(세종3년)에 축성이 완료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
앞에 올린 구례 산수유 마을을 둘러보고 이 19번 국도를 타고 내려 오다보면 화개장터를 만나게 된다. 화개장터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올릴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 화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그 유명한 쌍계사 벚꽃길이 이어진다. 물론 이 벚꽃길과 쌍계사에 대해서도 곧 올릴 계획이다. 우선은 이 화개장터에서 우측 남도대교를 건너면 광양 매화마을에 이르지만 하동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이 고소성과 평사리 평야, 그리고 드라마 토지의 촬영장, 최참판댁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은 이 고소성만을 탐방하고 뒤에 드라마 토지의 촬영장과 최참판댁에 대해 올릴 계획이다. 앞서이야기 했지만 하루에 산수유마을, 광양 매화마을 더군다나 이 고소성과 토지의 촬영지까지 다 둘러보긴 힘들다. 그렇지만 멀리까지 내려..
앞에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를 탐방했다면 이번엔 그 청량산의 한 축인 축융봉과 청량산성을 둘러보려 한다. 청량산은 군사적 요새였다. 이곳은 천연요새로서의 지형적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분쟁의 각축장이 되었고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연적인 절벽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세는 치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청량산의 산성은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동문지가 있는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과 다시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포곡선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으로 구분되며,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오마대로(五馬大道)는 말 5필이 동시에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가 공민왕 산성..
생각하기에 앞서 저 멀리부터 아픔이 먼저 찾아오고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녹여버릴듯한 절망과 자학이 빠른 걸음으로 찾아와 이렇게 사람을 혼절부터 시키고 만다. 그날도 팽목항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지만 단지 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몇번째 이 팽목항을 찾아 왔지만 한번도 차에서 쉽게 내리질 못했다. 기록하나 남기겠다고 손에서 카메라를 만지작거렸지만 한번도 카메라를 들고 내린적이 없었다. 그저 이 아픔하나 담아낼 마음의 공간하나 장만하지 못하고 번번히 발길을 돌렸고 이번에도 그랬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곳이 이 진도 석성이었다. 솔직히 이곳에 이런 성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흥분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