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온달산성이 그렇듯 지리적으로 이런 곳에 산성이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산성에 올라서니 찾는이 하나 없는 듯 휭하니 부는 바람만이 반기고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려는 듯 여기저기 한때는 성벽의 일부분을 차지하며 그 위용을 자랑했을 법한 돌무더기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그 오랜 세월 잘도 견뎌주어 고맙고 다시 과거의 영화를 찾으려는 듯 일부에서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 지고 있으니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정양산성은 영월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면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영월을 발아래 두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인근의 태화산성, 완택산성, 대야성 중 우두머리에 속하는 주성에 해당되는 고산성으로 왕검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성은 삼국이 한강 유역을 놓고 치열하게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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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뒤로 영월 읍내가 보인다.

산성입구 주차장에 서 있는 관광 안내도.

조금 오르다 보면 뜻밖에 정조대왕 태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이 태실은 정조가 탄생한 이듬해인 1753년(영조 29) 영월읍 정양리계족산(鷄足山)에서 흘러내린 봉우리에 조성되었고, 1800년 가봉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1929년조선총독부에서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구실로 전국의 태실을 경기도 고양 서삼릉으로 옮기니 정조대왕태실에서도 태항아리를 꺼내갔다. 6.25전쟁 이후 석회비료광산의 개발로 파괴·매몰되었던 것을 1967년 수습하여 영월읍내 금강공원의 KBS방송국 안으로 옮겼다.
현재 이곳에는 태실석함 등 태실조성에 사용된 석재와 태실비가 있고, 본래 태실이 있던 정양리에도 일부 석재들이 남아 있다. 태실비는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는데, 귀부는 귀갑문(龜甲紋)과 하엽문(荷葉紋)으로 장식하였고, 이수는 쌍룡을 양측면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운문을 채웠다.
비신은 이수와 동일한 석재로 만들었는데, 전면에는 “정종대왕태실(正宗大王胎室)”, 후면에는 “가경육년십월이십칠일건(嘉慶六年十月二十七日建)”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의 총높이는 232㎝, 비신은 높이 108㎝, 폭 52㎝, 두께 30㎝이다. 현재 영월군에서는 본래 태실이 있던 부근에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성앞에 이렇게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성의 일부인 외성의 흔적이다. 이렇게 묻혀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외성의 흔적이 선명하다.

몇걸음 옮기지 않아 정양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월 정양산성(寧越 正陽山城)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2003년 6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46호로 지정되었다.
영월 정양산성은 남한강에 돌출된 정양산(해발 430―565m)의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이 성은 문헌기록상 그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이 한강 유역을 놓고 다투던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세종실록지리지』에 ‘둘레 798보, 성안에 샘이 하나 있고, 창고 5칸이 있다’는 기록을 통해 조선 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전체적인 평면모습은 서북쪽을 향하여 넓은 사다리꼴 또는 키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내성의 둘레는 1,060m, 외성의 둘레는 570m로서 성벽의 총 연장은 1,630m에 달한다. 그리고 북서쪽에 자리잡은 정양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곳에 5개, 외성 내에 2∼3개의 차단벽을 갖고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매우 정교하게 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벽만 해도 높이가 최고 11.5m에 달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고대 산성 중에서 성벽 규모만으로 볼 때 최대로 꼽히고 있는 보은의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비교된다. 한편 남서쪽 일대에는 여장(女墻)이 남아 있다.
남쪽의 낮은 지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여러 건물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3군데에 다락문 같은 현문(懸門) 형식의 문터가 있고, 성벽이 꺾어지는 3군데에서는 성벽 바깥으로 돌출하여 만든 시설물인 치성(雉城), 혹은 곡성(曲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월 정양산성은 한강 상류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성일 뿐만 아니라 성벽과 문터, 곡성과 치성, 그리고 후대의 외성과 차단벽을 갖춘 유일한 산성으로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상·학술상 가치가 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다.

북문이 있던 자리란다.






산성에 올라서면 앞서 사진처럼 남한강과 뒤로 영월 읍내가 보인다.










정양산성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본 정조대왕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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