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더니 결국 창밖에 어슴프리하게 빗소리가 들린다. 빗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안에 깊은 금 하나가 지나가면서 온몸을 아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살아가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생각에 집착을 하면서 빠져드는 그 좌절감을 이겨낸다는 것도 상상만큼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나이도 지난 지 오래이다. 오늘의 내가 지난 어느날에 꿈꾸던 모습이 아니며 지난 어느 날 거기쯤 가고 있겠지 하고 생각한 곳에 내가 와 있지 않다는 것에 실망하고 어떤 좌절과 두렴움을 느끼기엔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여전히 난 땅끝에 가고 싶었다. 내 살아온 지난 세월을 마음으로 보고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스러져가는 그런 모습으로 지워내고 싶을때 이 땅끝이 생각나곤 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 사람들에..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개통하는 달마고도는 해남군과 미황사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송지면 미황사와 달마산 일원에 조성하였으며, 총 17.47km로 미황사에서 큰바람재, 노시랑골, 몰고리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2.71km에 이르는 1구간은 미황사에서 큰바람재에 이르는 길로 땅끝 천년 숲 옛길 노선과 연계가 되어 있어서 미황사까지 왕복할 수 있는 순환노선이며, 2구간은 4.37km로 큰바람재에서 노시랑길에 이르는 길이다. 3구간은 5.63km로 노시랑골에서 몰고리재로 이어지며, 몰고리재에서 미황사로 돌아오는 길인 4구간은 5.03.km로 전구간이 땅끝 천년 숲 옛길이다. 구간마다 미황사, 도솔암, 동백나무 군락지, 편백나무 숲, 튤립나무 조림지 등 역..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806번 지방도를 따라 4km 정도 내려가다 보면 녹두당을 만날 수 있다. 녹우당(綠雨堂)은 이 마을에 있는 해남 윤씨 종가를 일컫는다. 해남 윤씨는 연안 이씨, 여흥 민씨와 함께 해남 땅의 큰 성씨로서 명문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 작가인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이면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에서 난 사람이니, 녹우당(綠雨堂)은 그들의 자취가 벤 옛집이다. 집을 향해 들어가다 보면 마을 어귀쯤 되는 곳 오른쪽에 나지막한 둔덕이 꾸며져 있고 네모난 연못이 파여 있다. 못 주변에는 해송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으면 못 안에 마련된 두 개의 네모난 섬에도 해송이 심어져 있다. 이 못 있는 곳이 녹우당(綠雨堂)의 앞뜰이 되는 셈이다. 대문 바로 앞에는 높이 3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