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海美邑城)은 충남 서산시 해미읍에 있는 옛 읍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해미읍성 전통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 역사 중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1417년(태종17년)축성을 시작하여 1421(세종3년)에 축성이 완료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1651(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 호서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는 성 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들어섰다. 해방 후 1963년 1월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다. 2000년대부터 정비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동헌, 객사, 내아 등을 정비하였고, 2004년부터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2014년 8월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위키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여행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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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정가운데 있다하여 일명 진남문으로 불린다.







성내로 들어왔다.



























읍성객사.


관아문은 해미읍성의 호서좌영 관아 정문으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형식의 건물로 아래층 3칸에 달아 그 문으로 통행하고 상층은 누각을 만든 전형적인 관아문 형식이다.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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