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를 탐방했다면 이번엔 그 청량산의 한 축인 축융봉과 청량산성을 둘러보려 한다.
청량산은 군사적 요새였다. 이곳은 천연요새로서의 지형적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분쟁의 각축장이 되었고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연적인 절벽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세는 치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청량산의 산성은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동문지가 있는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과 다시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포곡선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으로 구분되며,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오마대로(五馬大道)는 말 5필이 동시에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가 공민왕 산성과 청량산성을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오마도 산성이라 했다. 특히 오마도 산성은 산성의 기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어기능 외에도 청량산성과 공민왕산성을 이어주는 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산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산성으로 평가 되고 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산성유지에서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수습된 바 있어 심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1595년(선조 28)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태는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구간별로 비교적 주변에서 구하기 용이한 돌이나 흙으로 성벽을 구축한 석성이나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산성은 장군의 지휘소였던 장대와 건물터, 성문터 등의 유구가 남아 있고 동문지에서 밀성대를 거쳐 북치성까지의 구간은 석성으로, 북치성에서 자연지형구간을 지나 축융봉까지의 구간은 토성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산성 터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일부 발견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1595년(선조 28)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흙과 돌을 섞어 성벽을 연결한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의 형태를 띤다. 둘레가 16㎞에 이른다.청량산 남쪽 건너편 축융봉(祝融峰, 845.2m) 동쪽에 잔존하는 산성이다. 산성 터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일부 발견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1595년(선조 28)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흙과 돌을 섞어 성벽을 연결한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의 형태를 띤다. 둘레가 16㎞에 이른다.
당시에는 말 5필이 동시에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가 성을 따라 나 있었는데, 이를 ‘오마대도(五馬大道)’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량산성 속의 마을 뒤 보호림 안에는 공민왕이 머물렀던 자리에 ‘공민왕당’이라는 조그만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산성에서는 4개의 문루, 수많은 불교 유적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도자기와 병기류가 출토된 바 있다.
아래를 클릭하면 함께 여행할 수 있답니다.
여기 갈래? (여행가자) | 밴드
그동안 고생했잖아요? 이제 여행도 좀 다니며 살아요. 우리 함께 맛집 찾아서 먹고 마시고 즐겁게 여행해요~ 제대로 여행하는법 알려드려요~
band.us

청량산성에서 바라본 청량산의 모습 청량산의 봉우리들과 청량사 그리고 멀리 하늘다리까지 훤하게 보인다.

앞에 올렸던 청량산 탐방 안내도이다. 앞에는 위에 청량산을 탐방했고 이번엔 사진의 아래 산성입구에서 밀성대 축융봉을 지나 공민왕당 앞으로 해서 내려올 것이다.

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성의 흔적으로 보인다.

시작부터 이렇게 성벽을 타고 좀 걸어야 한다.

밀성대가 보인다.

청량산과 마찬가지로 청량산성에 오르면서 반대편의 청량산을 마주보며 걷게 된다.

중요한 군사시설임을 입증하는 치가 빠지지 않고 있다.


여기도 빠지지 않는 계단의 압박, 이제 시작이다.

계단만 오르다 이런 길을 만나면 더없이 반갑다.

좋다 말았다.

그래도 이렇게 성벽이 보이니 너무 좋다.




먼저 밀성대에 들렸다가 북문지 방향으로 갈 것이다.

나무 사이로 밀성대가 보인다.

밀성대의 모습이다. 설명은 아래 사진을 참조.


밀성대에서 바라본 청량산, 청량사는 계곡에 가려 안보이고 앞장에 보았던 응진전과 하늘다리가 멀리 작게 보인다.


폰으로 보면 응진전이 잘 안보일 것이다. 멀리 장인봉까지 션하게 보인다.

그래서 땡겨서 봤다. 응진전도 보이고 장인봉이라 하늘다리의 반쪽이 보인다.

축융봉을 두르고 있는 성벽이 보인다.



밀성대 끝에 서 봤다. 무섭다.



청량산 장인봉의 위용(?)





하늘다리와 장인봉이 션하게 보인다.

청량사와 응진전이 보인다.


위 3장의 사진으로 거리를 달리하여 청량산을 바라 보았다.


청량사와 응진전. 그리고 청량산의 봉우리들.









축융봉 정상이 보인다.

내려갈때는 공민왕당 방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계단을 오르면 아래 사진이 나타난다.

축용봉 정상. 바로 앞쪽에 장인봉과 하늘다리가 보인다.

산아래 낙동강의 전경이 션하다.

청량산의 전 봉우리들이 한줄로 늘어선 모습이 참 아름답다.

장인봉과 하늘다리가 좀 가까이 보인다. 실제로 보면 참 아름답다.


청량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보인다. 이름을 알고보면 좀 낫지 않을까 싶다.



거의 내려와서 공민왕당이 있다.

'城(성)을 찾아 떠난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픈 역사를 지닌 해미읍성 (2) | 2018.04.10 |
---|---|
하동 고소성 (0) | 2018.02.28 |
대몽항쟁의 마지막 근거지 진도 남도석성 (0) | 2018.01.03 |
어둠에 갇힌 고창읍성 (0) | 2017.12.26 |
호남 내륙 방어의 보루 고창읍성 (2) | 2017.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