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하면 선운사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선운사를 보기위해 고창을 간 적은 없어도 오직 읍성을 보기 위해서는 일부로 시간을 내어 고창을 찾아간 적은 있다.
고창여행은 크게 고창읍성과, 고인돌 박물관을 비롯한 고창 고인돌지구와 선운사등으로 굳이 나눈다면 나눌 수 있는데 이번엔 고창읍성만 이야기 할까 한다. 사실 고창 읍성도 주간과 야간으로 나눌려고 하는데 그것은 지난번 공주 공산성처럼성의 주간과 야간의 조명 아래서 보는 느낌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전에도 이야기했듯 성곽의 여행은 최소 3번정도는 성곽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번은 성벽 위를, 한번은 성벽을 따라 외곽을 그리고 한번은 야간에~ 성을 돌아봐야 그 성이 지닌 매력을 조금은 알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고창 읍성도 주간과 야간으로 나누어 올릴 것이고 지루할 만큼 사진이 많은 것은 사진을 잘 찍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 느낌과 분위기를 그리고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보는 이에 따라서 다양한 각도에서 발견 되길 바라는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과 다르게 고창 읍성 앞에 서면 매우 깨끗하단 느낌을 갖게 된다. 읍성 앞에는 고창 문화의 전당과 고창 읍성 한옥마을 그리고 신재효 고택등이 있다. 고창 문화의 전당앞에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에 주차를 하면 되고 공간도 늘 넉넉하다 물론 무료이다.
그렇지만 읍성에는 입장료가 있고 입장료는 아래와 같다.
개인 - 어른 1,000원 / 청소년ㆍ군인 600원 / 어린이 400원
단체 - 어른 800원 / 청소년ㆍ군인 500원 / 어린이 300원
※ 어린이(초등학교 학생과 7세 이상~12세 이하), 청소년(13세 이상~18세 이상인 자와 학생증을 소지한 고등학생, 대학생), 군인(하사 이하의 군인과 전투경찰·의무경찰), 노인(주민등록증이나 경로우대증을 소지한 65세 이상인 자), 어른(19세 이상~64세 이하인 자)
고창 읍성은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지정면적 18만 9764㎡.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지역이 백제 때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동쪽으로 진산(鎭山)인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세 문과 치(雉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 여섯 군데, 수구문 두 군데,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고창읍지≫나 ≪동국여지승람≫에 단순히 둘레가 3,008척, 높이가 12척이고 성안에 삼지사천(三池四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고, 1453년(단종 1)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의 ‘濟州始(제주시)·和順始(화순시)·羅州始(나주시)·癸酉所築宋芝政(계유소축송지정)’이라는 각명(刻銘)으로 미루어 볼 때, 계유년(癸酉年)에 전라도의 여러 지역에서 축성을 위하여 역부(役夫)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의 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선조 6)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성곽은 모제석축이 아니라 모서리 이음의 공법으로 축조하였다. 그래서 외면만 돌을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져 있다. 동, 서, 북의 3문과 치 6곳, 수구문 2곳, 옹성 등이 있다. 북문은 2층처럼 생긴 다락집이고, 아래층 어간에 문짝 둔테구멍이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홍예문과 초루(譙樓 : 성 위에 세운 누각)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팬 누문(樓門)이 있는데 이것은 서울의 돈화문(敦化門)·홍화문(弘化門) 또는 평양의 고구려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는 것으로,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76년의 발굴 결과 서문지와 동문지가 확인되었으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재현시켜 놓았다. 성벽을 쌓은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굄돌을 넣는 방식으로 쌓았으나, 그 가운데는 초석(礎石)·당간지주(幢竿支柱) 같은 것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그러나 미석(眉石 : 성의 맨 아래에 성벽 바깥으로 내밀게 깐 얇은 돌) 이하의 성가퀴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읍성의 존재는 중국·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적·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시설이었다. 특히, 이 성은 여자들의 성벽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이는 한해의 재앙·질병을 가시게 하는 기양의식(祈禳儀式 :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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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의 동문인 등양루


고창읍성의 정문인 공북루가 옹성에 가려져 있다.

옹성에 대해서는 앞에 무장읍성을 다룰때 설명되어진 관계로 생략한다. 공북루 앞에 우뚝선 옹성.

답성놀이상
「답성놀이하며 무병장수 하세요」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 때문에 윤달이면 부녀자들의 답성놀이가 줄을 잇고 있다. 윤달 중에서도 초엿새, 열 엿새, 스무 엿새는 저승문이 열리는 날로 전해져 답성객들로 크게 붐빈다. 성을 돌 때에는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세 바퀴 돌아야 한다. 머리에 인 돌을 성입구에 쌓은 뒤 손수 가꾼 오곡을 백지에 펴고 삼배를 올리며 소망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면 된다.


어느 성이나 가보면 이렇게 각종 공덕비니 송덕비니 해서 비석들을 많이 모아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 치는 앞에 청주 상당산성편에서 그 용도와 목적에 대해 자세히 다룬 것이 있다.

고창읍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공북루, 공주의 공산성에도 같은 이름의 공북루가 있다.

옹성에 둘러쌓인 공북루를 보면 이곳이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읍성에서 바라본 고창 읍내 전경.

읍성 정상에 있는 치.

3.1 독립 만세터.




읍성의 서문인 등양루.




등양루의 안쪽.

등양루 안에서 문을 열고 보면 이렇게 옹성의 안쪽이 보인다.

옹성의 안쪽면.












진서루.

진서루의 내부.


옹성 위에서 본 진서루.





공북루의 안쪽이다. 매표소에서 이 공북루를 통해 들어오게 되는데 그 안쪽이다.

읍성의 풍화루이다. 고창읍성 연못 옆에 있는 2층 누각으로 풍년과 고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뜻으로 풍화루라고 하였다.
낙안이나 다른 읍성과 다르게 고창읍성의 특징은 성내에 관아만을 두고 일반 백성들은 성밖에서 생활 하였다. 그러다 유사시에는 모두 성안으로 집결하여 전쟁에 대비했으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두어 식수를 해결하였다.

성내에 있는 관청. 관청은 관주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의 접대와 각종잔치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하였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관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92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성내에 있는 동헌. 조선시대의 각 고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정사를 세웠는데 이를 동헌이라 하였다. 동헌 옆에는 내동헌 곧 내아라고 하는 수령의 살림집도 있다. 동헌은 평근당이라는 당호의 현액이 석전 황욱의 필치로 새겨 걸었다.






장청: 지방의 군, 현을 지키는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 병방(兵房), 군교(軍校)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저 앞에 설명되어진 관청.

왼쪽에 작게 보이는 것이 성내에 세워진 척화비이다. 척화비:조선 고종임금 때 임금의 아버지인 대원군이 서양인들을 배척하기(내쫓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이다. 고창읍성에도 1871년에 세워졌다.

향청: 향청은 지방의 수령을 보좌하던 자치기구이다.

성내에 있는 옥. 용도야 다들 알테고~

공북루의 안쪽.



이곳으로 해서 성안에 들어가게 된다. 정문인 공북루.





이제는 성밖에서 한바퀴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성을 2바퀴 돌면서 둘러보았다. 조명이 들어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뭘 쫌 먹을까 하다가 이곳에 오면 항상 들리는 집이 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먹는 이야기나 식당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없는 것은 아무리 맛집이니 뭐니 해도 내 입맛에 아니면 아닌데 그걸 그렇게 맛있다 어쩐다 하는게 아무래도 아닌거 같아서이다. 여기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왼쪽으로 순두부집이 있는데 우선 깨끗하고 깔끔하며 전통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지 구수한 맛이 내 입에는 딱이라서 여길 오면 항상 이집엘 간다. 또한 어딜가도 혼자서 뭐 먹거나 메뉴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마당에 순두부는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메뉴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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