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로 유명하다. 근데 내겐 딱히 여수에 대해 추억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살아가면서 추억할만한 장소가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한번쯤 고즈넉하게 가서 옛 생각에도 잠겨보고 과거의 어느 날 어거지로라도 잊어야했던 사람과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도 하는데 말이다.
여수에 대한 기억이라야 한여름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여행 갔다가 엑스포공원에서 그 직원들의 불친절과 고압적 자세 때문에 대판 싸운 기억 밖엔 없다.
그래서 다시는 가지 말자던 여수이고, 누가 여수 밤바다를 이야기하면 아니 밤이 다 그 밤이지 거긴 뭐 하러 가느냐고 핀잔을 주고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럼에도 여수에 대한 매력은 그 은근함과 사람을 불러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금오도 비렁길을 올렸는데 그 비렁길을 가기위해 여수에 들려 참 오랜만에 여수와의 재회였다. 섬에서 하룻밤 묵을 것이 아니라면 대게는 첫배를 타야 오후에 섬에서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첫배를 타기위해 서울에서 밤새 달려갈 수는 없고 하는 수 없이 하루 전에 여수에 가서 시내도 한번 거닐어 보고 그 밤바다에서 어거지로라도 여수와 화해하고 싶었다.
또한 돌산대교도, 포장마차거리도, 그리고 밤바다도~ 그래서 찾아낸 것이 여수 갯가길 밤바다 코스이다.
이순신광장 -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 여수수산물 특화시장- 돌산대교 - 돌산공원 - 진두 해안길 - 거북선대교- 하멜등대 - 여수해양공원 - 이순신광장 무술목 거리는 대략 6.45km이고 시간은 1시간 30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건 그냥 암 생각 없이 걸었을 때 그렇게 걸린다는 뜻이고 걸으면서 보고 즐기고 뭐라도 먹다보면 시간은 예정할 수 없다.
출발은 돌산대교에서 시작했다.
뭐 한바퀴 빙 돌아오는 길이니 딱히 시작점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돌산대교에서 해질 무렵 출발하면 포장마차가 들어서는 해양공원에 해가 진 다음 도착하여 거북선대교, 케이블카 그리고 말 그대로 여수 밤바다를 보기엔 적당하다.
그리고 다시 돌산공원으로 돌아오면 돌산대교와 여수시내의 야경을 감상 할 수 있겠다 싶으니 시간에 구애 받으면서 여행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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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상징과도 같은 돌산대교.
이 사진의 의미는 해가 이쯤 됐을때 출발하면 여수 해양공원과 거북선대교등 여수의 밤바다를 즐기기에 딱 좋다는 뜻이다.
이곳 유람선 선착장에 주차를 하면 된다.
돌산대교를 건너오면 정자가 하나 있다. 그 위에 서면 이런 풍경이 보인다.
거북선 대교 옆을 지나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여유롭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느긋함이 난 좋다.
이순신 광장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기억하듯 이분들이 겪은 그 아픔과 상처 또한 기억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 생각한다.
이순신 광장에 있는 거북선 모형.
거북선 모형의 내부.
진남관.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는 일제 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에 재 복원한 2층 누각이다.또한 1599년 선조32년 기해년 12월에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75칸의 거대한 객사이다. 그 후 절도사 이도빈이 1664년 갑진년에 개축하고 숙종42년(1716) 94대 이여옥 수사 때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재면이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또한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는 하례를 드리고 나라에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1910년 고종 4년 경술년 때에는 여수 공립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학교로 사용한 바 있다. 준국보 제480호로 1959년에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보수에 착수하게 되었으며, 1973년 단청을 하고 1978년에 4억 2천만원을 투입하여 진입도로를 개설한 바 있다. 2001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거대하고 웅장한 모양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조선 초기 객사양식으로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의 건축은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이순신 광장 옆에 있는 중앙선어시장
이곳에 앉아 달달한 마키아또 한 잔 하고 있으니 서서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고 있다. 에지간한 멘탈 아니면 이런곳에 뻘쭘하이 앉아 마끼아또 마시기 쉽지 않다.
거북선 대교 아래의 하멜 기념관과 하멜 등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이 1653년 상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난파되어 제주도에 표류하고 조선에서 13년 동안이나 억류되어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탈출해서 1668년 네덜란드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하멜표류가가 있다.
17세기 조선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기록한 최초의 유럽서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원래는 억류되어 있는 동안 밀려있던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제출한 일종의 보고서며 때문에 자신들이 고생한 부분을 과장했다는 평도 존재한다. 하멜은 처음에 제주도로 표류해 왔으나 후에 여수로 오게 되고 이곳 여수를 통해 탈출하여 나가사키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갔기에 이곳에 하멜 등대와 기념관이 있나 보다.
문뜩 들었던 생각인데 저 유람선은 직접 타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게 더 낭만적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인가!!
이제 이 거북선 대교를 건너 돌산공원으로 가게된다.
아무리 멘탈이 강해도 혼자 케이블카를, 그것도 밤에?? 그건 아닌거 같아 케이블카는 타지 않았다.
돌산공원에 있는 설치물.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겐 참 얄궂은 설치물이다.
저곳이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고 포장마차가 있는 곳이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돌산대교. 그 조명에 따라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다음날 금오도 비렁길을 탐방하고 나와서 다시 들린 돌산공원.
멀리 진남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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