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누구나 내일을 위해 저축을 하고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듯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아무리 마음에 어떤 상처나 아픔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더 이상 내일을 여는데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에 서 있다.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마음에 남은 상처와 아픔, 그리고 배신감까지 역시 내가 어쩐다고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다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을 준비하는 작은 노력으로나마 그것들을 극복하고 싶은, 아니 적어도 잊으며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은 또 아니었나 싶다.
사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굳이 어떤 의미 따위를 붙일 이유는 없다.
가야산 소리길이 그렇다.
걷기 좋고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길이다.
가는 내내 나무들이 빼곡한 숲길로 그늘 속을 걷는다 생각하면 되고 또 시원한 계곡물 소리로 채워지고 이따금 새소리로 반주도 해주니 에지간하면 이어폰은 잠시 빼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뭐 동네 슈퍼 가듯 쓰레빠 끌고 가면 조금 곤란하다.
총길이가 6km로 2시간 30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거리와 시간은 대장경축장부터 해인사 입구까지의 거리인 듯 싶다.
거기까지 가서 해인사에 안 들어가고 그냥 올 수도 없고 또 중간에 해인사에서 어김없이 입장료를 받고 있으니 가는 김에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도 좀 보고 그렇게 돌아옴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리고 탐방의 출발은 대장경기록 문화테마파크를 지나 조금 올라가서 왼쪽으로 근민교를 지나면 황산2구 경로당 앞에 주차장이 있다.
온종일 4천원인가 받는데 아마도 동네에서 운영하는 듯 하니 길을 내어준 동네 분들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이곳에 주차하고 탐방을 시작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걷기 좋은 길의 또 다른 매력(?)은 거나한 풍광은 없어도 그저 걷는데 집중하며 옆에 누가 있음 속닥하이 대화도 나누고 혼자라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다.
그런 이유로 이 길들에서는 풍경을 보기보단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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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웅전 지붕의 위엄.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계곡길이 그렇다. 딱히 쥐이는 풍경보단 이런 소소한 다리와 시원한 물소리 듣고 걸으며 자신과 대화하거나 옆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매력.
와불.
그저 돈받는 곳이다. 입장료, 돈받는 곳까지 이렇게 위엄(?)있게 무슨 국가 보호시설이나 군부대 입구처럼 지어 놨으니 참 대단한 한국불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이라도 있어 그 관람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하지만 이렇게 다니다 보면 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옆길을 지나간다는 이유로 돈을 받는 절은 또 뭔지 이게 금액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옛날에는 참 화려하고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는데 이젠 허름하게 빈 가게가 늘어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해인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 255호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쪽의 3층 석탑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으로, 불교의식을 행할 때 불을 밝혀두는 기구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높직한 4각 바닥돌은 한 면에 2개씩의 안상(眼象)을 새겼다.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6cm가량 층을 둔 다음 8잎의 연꽃무늬를 두었다. 가운데기둥은 후대에 와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모습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8각 화사석은 4면에 4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나머지 4면에 창을 뚫었다. 지붕돌도 역시 8각으로, 경사면이 움푹하여 처마도 곡선처리 되었다. 꼭대기에는 몇개의 보주(寶珠:작은 공모양 장식)가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바닥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팔만대장경을 만나게 된다.
예전에는 이 곳에 들어가서 대장경을 볼 수 있었는데 훼손의 우려로 이젠 이렇게 밖에서만 봐야 하니 참 안타깝다.
마을 입구에 핀 코스모스를 보니 주차장까지 다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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