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창룡문까지 봤으니 이번엔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를 살펴보겠다.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는 걷기가 좋은 평지로 되어 있어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팔달문까지는 3개의 포루와 3개의 치 그리고 봉돈과 하나의 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일단을 걸으면서 각 포루와 치 그리고 봉돈 등을 살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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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 축대 위로 누각이 서 있는데 2층으로 지어져 매우 높게 보인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 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한양도성의 흥인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 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1964년 9월3일 보물 제 402호로 지정되었다.-출처 위키백과-
창룡문에서 팔달문사이에 첫번째로 동일포루가 있다.
동일포루(東一舖樓)는 창룡문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1796년 (정조 20년) 7월 10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정면 1칸, 측면 3칸의 중층으로 3량의 우진각지붕을 갖추었다. 하층 주위의 3면은 여장으로 둘려져 있고, 원근총안(遠近銃眼)을 내었다. 상층 동측 2칸은 마루를 갈고 1칸은 통 2층으로 하여 목조 사다리를 설치하였다.
포루(舖樓)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곳이다.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일포루에서 본 창룡문.
동일포루와 창룡문.
성밖에서 본 동일포루.
동일포루와 오른쪽에 창룡문이 보인다.
동일포루에서 본 동일치.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동일치는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다.
동포루.
동포루(東砲樓)는 봉돈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 (정조 20년) 7월 16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3중층으로, 정면 1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하층과 중층의 벽은 돌출부 3면을 전축했고, 성내측면은 석축으로 했으며, 외부의 포혈과 총안을 두었다. 상층 여장의 타구(垛口) 및 전안(箭眼)은 서포루와 비슷하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성밖에서 본 동포루.
동포루.
봉돈.
봉돈(烽墩)은 불을 비추어 행궁을 수비하고 성을 수비하며 주위를 정찰하여 사태를 알리는 군사 및 교통상의 신호 시설물이다. 봉돈은 화성 동문의 서남쪽에 있으며, 5개의 연기구멍을 갖추어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되었다. 1796년(정조 20년) 6월17일에 완공되었다.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키고 하층은 석축으로 쌓고, 위는 전축으로 성벽보다 높이 쌓아 위쪽에 여장을 두었다. 내부는 3층의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가장 높은 곳에 5개의 횃불 구멍인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여장 3면에는 포혈 18개를, 그 아래 3면 벽성(甓城)에는 총안 18개와 누혈(漏穴) 1개를 뚫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것에만 사용을 했다. 나머지 4개는 긴급한 일이 없으면 횃불을 들거나 연기나게 하지 않았다.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그리고 적과 접전시에는 5개의 봉화를 올렸다.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이다.
동이치에서 본 봉돈.
동이치에서 본 봉돈과 동이포루
동이포루에서 본 봉돈과 동이치 동포루가 나란히 보인다.
성밖에서 본 봉돈과 동이포루.
동이포루에서 본 봉돈과 동이치
동이포루.
동이포루(東二舖樓)는 봉돈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층누각 밑에는 총안을 뚫어 놓았다. 1796년 (정조 20년) 7월 3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이고 처마는 홑처마에 납도리를 썼으며, 지붕틀은 5량의 우진각지붕이다. 하층의 총안 등은 동북포루와 동일하다.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며 1796년(정조 20) 7월 3일에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동이포루에서 본 봉돈과 동이치 그리고 동포루.
성밖에서 본 동이포루
동남각루.
동남각루(東南角樓)는 남수문 바로 옆에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벽이 꺾인 모퉁이에 있어서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1796년 (정조 20년) 7월 25일에 준공되었다.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이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남각루에서 본 남수문과 팔달문 그리고 팔달산을 따라 성곽이 보인다.
남수문 방향에서 본 동남각루.
성밖에서 본 동남각루.
남수문.
남수문(南水門)은 북수문과 마찬가지로 교량과 수문의 역할, 비상시에는 군사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정조 18년 2월 28일 공사에 착수했다가, 이듬해 11월까지 공사를 중단되었다가 다시 공사를 재개하여, 1796년 (정조 20년) 1월 16일에 홍예가 이루어졌다.
남수문은 화홍문과 마주서서 물줄기의 흐름을 인도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석축으로 9칸의 홍예를 틀고 철전(鐵箭)을 설치하여 잠가두는 것이 화홍문의 제도와 같았다. 남수문은 9개의 홍예문 위에는 통로를 만들고 여장을 높이 쌓았는데, 돌기둥 8개가 돌다리를 떠받들게 되어 있다. 또한 장포(長舖)라는 전돌로 만든 긴 포를 설치했는데 길이는 수문의 다리와 같고 폭은 다리의 3분의 2로 해서, 이 안에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많은 포혈을 설치하여 군사시설로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원시는 수원 화성이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0년 9월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2010년 6월 공사를 시작한 남수문 복원사업은 길이 29.4m, 너비 5.9m, 전체 높이 9.3m로, 수문 아래쪽은 9칸 홍예수문(무지개다리)을 연결한 형태이고 수문 위쪽은 전돌을 이용해 원형 복원됐다.-출처 위키백과-
남수문.
남수문과 팔달문 사이에 있다.
팔달문 설명은 앞에 있다.
팔달문의 안쪽.
9월의 팔달문.
팔달문까지 둘러 보았다. 다음엔 팔달문에서 화서문까지 걸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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