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까지 수원화성의 팔달문까지 살펴 보았으니 이제 팔달산을 올라 화서문까지 가보겠다.
나즈막한 팔달산을 올라 수원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걷는 느낌이 괜찮다. 또한 이 구간의 서남암문에서
용도(甬道)를 따라 외성의 끝에 있는 서남각루까지 가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수원시내의 전경도 좋다.
팔달문에서 남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성곽이 없으나 길을 찾는데는 어렵지 않다.
또한 바로 관광안내소가 있어 필요하면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또한 팔달문 관광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행궁 공방길이 있으며 화성행궁 주차장과 수원행궁이 나온다.
시간이 되면 바로 팔달산으로 오르기 보단 공방거리에서 이것 저것 구경도 하고 거닐다 가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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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 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들었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아래 너비가 각각 9척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각각 22척 2촌이다. 홍예문 사이 좌우의 무사는 높이가 각각 18척이고 수문청은 문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같은데 높이는 11척, 안쪽 둘레는 76척 정문에서 36척 떨어져 있으며 바깥 쪽 둘레는 110척이다. 안과 바깥 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 1964년 9월3일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었다.
팔달문과 팔달문 관광안내소가 있다. 뒤로 돌아 올라가면 된다.
팔달산을 오르는 계단과 수원화성의 성곽. 중간에 남치가 보인다.
이렇게 보면 계단의 압박이 좀 느껴지는 듯 하지만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다. 금방 끝난다.
수원시내와 오른쪽에 남치가 보인다.
오른쪽에 남치가 있다.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화성에는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
이 치는 지금까지 수원화성에서 자주 보았고 앞으로도 수원화성을 탐방하면서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치는 성곽의 방어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팔달문과 왼쪽으로 성곽을 따라 동남각루가 보인다.
남포루. 남포루(南砲樓)는 팔달산 중턱 서남암문 근처에 있으며, 1796년 (정조 20년) 7월 9일에 준공되었다. 구조는 동북포루와 거의 동일하다. 여장에는 타구와 전안을 뚫었고, 타구의 안에는 전판문을 달았다. 마루, 지붕 등의 구조는 서포루와 비슷하다. 남포루에는 대포와 혈포가 각 2대, 총안 19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포루 또한 화성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방어시설물이다.
남포루.
서남암문의 측면 포사.
서남암문. 서남암문(西南暗門)은 보통 다른 암문과는 달리 서남각루(西南角樓)로 나가는 암문으로서 유일하게 암문 위에 포사(舖舍) 1칸이 세워져 있다. 1796년 (정조 20년) 8월 6일에 암문의 홍예가 이루어졌다. 포사는 한 칸 사방의 규모로, 온돌을 놓고 사면에 판문(板門)을 대고 바깥쪽 문에다 짐승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서남암문을 통과해서 서남각루(화양루)로 가는 길이다. 용도라고도 한다.
서남암문의 바깥쪽.
용도 동치. 이길을 용도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서남이치 라고도 한다. 바로 아래의 용도서치와 마주 보고 있다.
용도서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서남일치 라고도 한다.
서남각루. 화양루라고도 한다.
서남각루. 서남각루(西南角樓)는 서장대와 팔달문의 중간지점 서남암문에서 용도(甬道)를 통해 뻗어나간 외성의 끝 부분에 있으며,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한다. 1796년 (정조 20년) 4월 16일에 공사 착수, 7월 13에 상량했으며, 7월 20일에 누각의 준공되었다. 서남각루는 용도 끝에 있어서 화성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구실을 하게 하였다.
각루는 성곽 부분 가운데 높은 구릉을 택하여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가끔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정자처럼 다기능성이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와 서남각루 등 4개의 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서남각루에서 본 외성의 모습.
서남각루에서 본 서남암문까지의 용도.
서삼치. 이 치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성 밖에서 본 서삼치.
서남치를 지나 서포루로 오르는 길이다, 저 출입문 밖에 서장대 관광안내소와 휴게소가 있다.
서포루로 가는 성 바깥쪽 길.
서포루. 서포루(西砲樓)도 북서포루와 마찬가지로 서장대의 북쪽에 있으며, 1796년 (정조 20년) 5월 30일에 준공되었다. 정면 1칸, 측면 3칸의 3중층 건물이나 성내의 지반면 위로는 회상층의 1층 누각만을 세운 것처럼 보인다. 처마는 납도리 홑처마이며 3량의 우진각지붕이다.
서포루.
성밖에서 본 서포루.
서포루 뒤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9월의 효원의 종각. 서포루와 서암문 사이에 있다.
서암문. 서암문(西暗門)은 팔달산 서장대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입구가 꺾여 있어서 찾기 힘들다. 안쪽의 너비는 5척 6촌, 높이는 7척 7촌이고, 바깥쪽은 너비 4척 1촌, 높이는 7척 2촌이다. 정조 20년 6월 18일에 홍예가 이루어졌다. 문의 안의 높이는 높고 밖은 낮아 안에 계단을 설치해서 계단으로 내려가서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암문은 북암문이나 동암문과 같이 성곽을 깊게 하여 암문을 설치하면 지형상 쉽게 발견될 수 있으므로 암문이 옆으로 틀어 앉혀져 있어서 암문을 쉽게 발견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암문의 안팎에다 평여장(平女牆)을 설치하였다.
성밖에서 본 서암문.
서암문에서 보이는 서장대.
서장대.
서장대(西將臺)는 화성의 군사지휘본부로서 '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도 불린다. 팔달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1794년 (정조 18년) 8월 11일 공사에 착수,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됐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장대에서는 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화성 일대는 물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을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 곳에는 장대석으로 대를 쌓고 세 벌의 계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다 또 한 단의 대를 놓고, 또 그 위에다 2층지붕의 건물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성행궁과 광장.
서장대에서 보이는 수원화성의 모습과 장안문이 보인다.
9월 아침, 서암문과 서장대가 보인다.
서암문에서 바라본 서장대.
서노대. 서장대 바로 뒤에 서노대(西弩臺)가 서있다. 서노대는 서장대의 서북쪽에 동향하여 성 한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곳으로 정팔각형꼴로 전벽돌을 쌓아놓았고 계단 부분은 트이게 하였다.
서노대 위에서 본 서장대.
서장대와 서노대.
서이치, 치에 대한 설명은 앞에 있다.
성 밖에서 본 서이치의 모습.
북서포루쪽에서 본 서이치.
북서포루. 북서포루(北西砲樓)는 서장대의 북쪽에 있으며, 1794년 (정조 18년) 9월 24일에 준공되었다. 정면 1칸, 측면 3칸의 3중층이며 성 위로는 최상층의 누각이 세워져 있다. 포혈, 총안, 여장, 타구, 전안 및 출입문의 구조는 서포루와 동일하다.
성 밖에서 본 북서포루.
북서포루.
북서포루에서 본 서일치.
서일치, 치에 대한 설명은 앞에 있다.
서북각루에서 본 서일치.
9월의 서일치.
서일치.
성밖에서 본 서일치.
서북각루.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서문 옆에 있으며, 동남각루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1796년 (정조 20년) 7월 9일에 완공되었다.
각루는 성곽 부분 가운데 높은 구릉을 택하여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가끔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정자처럼 다기능성이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와 서남각루 등 4개의 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성 밖에서 본 서북각루.
서북각루.
성 밖에서 본 서북각루.
9월의 서북각루.
서북각루.
화서문쪽에서 바라본 서북각루.
수원화성의 축성 장면을 디오라마로 꾸며놨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했고 서북공심돈은 뒤에 하겠다.
화서문의 앞부분인 옹성에서 보이는 그림.
화서문의 성 안쪽이다.
서북각루에서 보이는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옹성.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옹성이 확연히 보인다.
화서문으로 내려가는 길.
회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의 안쪽.
화서문의 안쪽. 밖으로 옹성이 가리고 있다.
옹성 쪽에서 올려다 본 화서문.
화서문의 내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의 옹성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에서 본 수원시가.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화서문 북치(北稚) 위에 있으며, 1796년 (정조 20년) 3월 10일에 완공한 공심돈이다.
성곽과 전축 및 누각 모두 거의 축조 당시의 완형(完形)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치의 높이는 15척(4.25m)이며 서북 2면에 각각 현안(懸眼) 두 개를 내었고, 그 위에 벽돌을 사용하여 네모지게 높이 쌓고 그 속을 비게 하였다. 벽축의 높이는 18척(5.58m)이고, 아래의 네모난 넓이는 23척(7.13m) 위의 줄어든 네모난 넓이 21척(6.51m)이다. 내부는 3층으로 꾸며 2층과 3층 부분은 마루를 깔았고, 사다리를 설치하여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돈대의 꼭대기에는 포사를 지었으며, 돈대 외벽에는 총안, 포혈(砲穴) 등을, 상층의 벽면 위쪽 판문(板門)마다 각각 전안(箭眼)을 뚫었다. 아래층 내면에는 벽돌로 홍예를 튼 작은 문을 내어 출입하도록 하였다. 서북공심돈의 성벽 높이는 약 5m이고, 전축 부분은 성 위에서 5.14m, 처마 높이는 성 위에서 도리 밑까지 6.27m이다. 2011년 3월 3일 보물 제 1710호로 지정되었다.
공심돈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지은 망루와 같은 곳이다. 남한산성에도 설치가 되어 있지만 성제상으로 돈의 내부가 비어 있도록 설계된 것은 화성이 처음이다. 중국의 병성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하여 널빤지로 누(樓)를 만들고 나무사다리를 이용하여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나 백자총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화서문의 옹성에서 보이는 서북공심돈.
9월의 서북공심돈.
성 밖에서 보이는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과 오른쪽에 서북각루가 보인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지붕.
화서문과 붙어 있는 서북공심돈까지 살펴봤다. 다음에 한번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과 시작한 화홍문옆의 북동포루까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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