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은 수원화성을 탐방하는데 있어서 이것저것 살펴 볼 것들이 많아 따로 올렸다. 이제 북암문으로 해서 창룡문까지 올리고 나머지 부분도 이렇게 4대문을 중심으로 성을 둘러 볼까한다.
가능하면 같은 장소라도 다양한 모습의 수원성의 안과 밖의 모습을 담으려 하였으나 여건상 그렇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수원 화성을 탐방하면서 단지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정조가 왜 이곳으로 천도를 하려고 하였을까 하는 그의 이상과 꿈은 물론이고 한 인간으로써 지니고 살아야했던 아픔까지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성곽 하나 하나에 박힌 돌하나가 달리 보일 수도 있으니까~
수원 화성 전체에 대한 내용은 앞에 올렸던 방화수류정의 앞부분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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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창룡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남공심돈과 달리 성벽을 쌓은 안쪽에 건조되었다. 이 공심돈은 동심원 형태의 건축물이다.
높이는 17척 5촌(5.42m), 바깥 원 둘레 122척(38m),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1.24m), 안쪽 원 둘레 71척(22m),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1.39m)의 공간을 비워두고, 내부에는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였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는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는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아래층 공심에서 나선형의 벽돌 계단으로 윗층의 집을 이르기 때문에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공심돈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지은 망루와 같은 곳이다. 남한산성에도 설치가 되어 있지만 성제상으로 돈의 내부가 비어 있도록 설계된 것은 화성이 처음이다. 중국의 병성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벽돌로 3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하여 널빤지로 누(樓)를 만들고 나무사다리를 이용하여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나 백자총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암문. 방화수류정 바로 옆에 있다.
북암문(北暗門)은 동암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으며, 방화수류정 근처에 있다. 그 근처는 약간 골짜기진 곳이라서 밖에서 찾기가 어렵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이다. 1795년 (정조 19년) 2월 23일 에 홍예가 이루어졌다.
성 밖에서 본 북암문
북암문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 본 모습, 오른쪽에 북암문 윗부분과 왼쪽으로 동북포루가 보인다.
동북포루.
동북포루(北東砲樓)는 장안문과 북수문 사이에 있으며, 1794년 (정조 18년) 9월23일에 준공되었다. 정면 1칸, 측면 3칸의 2중층이며, 도리는 납도리이고 홑처마의 5량 구조이다. 포루 밖으로는 우진각지붕을 안으로는 박공지붕으로 하였다. 하층의 중간에서 중층 및 상층에 계단을 설치해서 위아래로 돌아다닐 수 있도로 했다. 그 외는 북서포루와 비슷하다.
북암문쪽에서 본 동북포루.
동장대쪽에서 바라본 9월의 동북포루.
동암문쪽에서 본 동북포루
성 안쪽의 동암문.
동암문(東暗門)은 동북포루와 동장대의 중간에 있다. 성벽은 안쪽으로 굽어져 들어가 북암문과 같은 형태이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이다. 1796년 (정조 20년) 3월 25일에 홍예가 이루어졌다.
성 밖에서 본 동암문.
지금(2018년 2월1일)기준으로 안전과 공사관계로 동암문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성 안쪽의 동암문과 멀리 동북포루가 보인다.
가운데 들어간 부분이 동암문이다. 현재(2018년 2월1일)는 공사관계로 가림막이 되어 있다.
동암문에서 본 동장대.
동장대.
동장대(東將臺)는 성의 동쪽 동북공심돈과 동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795년 (정조 19년) 7월 15일에 공사 착수, 8월 10일에 상량, 8월 25일에 장대 건물을 완공하였다.
이 장대의 지형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험하게 높이 솟아 있는 곳으로 동쪽 구릉인 선암산(仙巖山)의 요지이자 성중에서 지휘소를 설치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3단으로 쌓은 대가 있고, 3층의 대에서는 총수(銃手)가 숨어서 쏘기에 편리하게 시설되어 있다. 한가운데 좌우에 와장대(臥長臺)를 설치하고, 흙을 판판하게 해서 돌로 깔아 하대에서 말을 타면서도 장대에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장대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9칸의 익공식(翼工式) 단층의 팔작기와지붕이다. 건물 주변에는 터를 동서로 80보, 남북으로 240보로 넓이를 잡아 조련장(操鍊場), 일종의 훈련장 같은 것을 닦아 놓았다.
성 밖에서 보이는 동장대.
창룡문쪽에서 보이는 동장대의 모습.
동장대에서 바라본 창룡문과 활터.
동북공심돈쪽에서 본 동장대
동암문에서 보이는 동장대와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 자세한 설명은 앞부분에 있다.
활터에서 보이는 동북공심돈
창룡문에서 보이는 동북공심돈
9월의 동북공심돈, 앞에 옛복장을 갖춘 경비병이 있다.
동북공심돈에서 보이는 활터와 휴게소
동북공심돈에서 창룡문쪽으로 있는 동북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쇠뇌를 쏠 수 있도록 높이 지은 시설물이다.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다. 화성에는 서노대(西弩臺)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노대의 내부
노대의 내부에서 보이는 동북공심돈.
창룡문.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창룡문의 옹성 안쪽.
창룡문의 옹성.
동북공심돈에서 바라본 창룡문. 기구가 보이는데 기구에서 수원화성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한다.
왼쪽부터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그리고 창룡문이 보인다.
성밖에서 바라본 창룡문.
북암문에서 동북포루 동암문, 동장대 그리고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를 거쳐 창룡문까지 왔다. 다음에 창룡문 옆의 동일포루에서 시작하여 팔달문까지 올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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