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은 영주 아래쪽에 있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영주IC로 나와 영주시내 초입에서 문수면 와현리 방향으로 향한다. 수도리 전통마을 표지판이 나오면 이를 따라가면 된다. 무섬마을에 들어서려면 수도교를 건너야 한다. 마을 뒤편에 자리한 무섬교도 육지속 섬마을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통로다. 이들 다리가 놓이기 전, 마을과 바깥을 잇던 것은 외나무다리였다. 마을 주민들은 "외나무다리로 꽃가마 타고 시집왔다 죽으면 그 다리로 상여가 나갔다"고 했다. 무섬마을로 들고 나는 시작과 끝을 보아온 외나무다리는 여전히 무섬마을의 안과 밖을 잇는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현재 약 48가구에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옥중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예안김씨는 선성김씨라고도 하는데 현재 종친회에서 정식으로 부르는 이름은 예안김씨라고 한다.
해우당과 만죽재가 특히 알려져 있으며,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해우당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가옥이다. 해우당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인데 해우당은 그의 호이다. 해우당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였다고 한다.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바로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안채에는 역시 흥성대원군이 쓴 '대은정'이라는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무섬마을에서 또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가옥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는 만죽재이다. 반남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헌종7년)에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이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죽재의 편액은 석운 박기양의 글씨이다. 또한 마을의 중앙에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만운고택이 있다. 민속자료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는 집이며, 이집을 지은 만운 김휘걸의 호를 따서 지은 집이다. 바로 시인 조지훈의 처갓집이다. 조지훈은 시 '별리'를 통해 이곳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한다.
이외에 무섬마을의 대표적인 부잣집 가옥인 김위진 가옥(문화재 자료 제360호), 담장없이 지어진 김정규 가옥(문화재 자료 제 362호),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가 남아 있는 박재연 고택 등도 둘러 보아야 할 전통 가옥이다. 무섬 마을에는 또 한가지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있다. 바로 350여년간 무섬 마을과 강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이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 외나무 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이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채 건너야 한다. 외나무 다리는 해마다 새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도교의 건설로 사라졌던 외나무 다리는 최근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매년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를 만들어가는 중심이 되고 있다. 원래 외나무 다리는 3개가 만들어 졌었다고 한다.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이 학교 가는 다리. 지금은 농사지으로 가는 다리 하나만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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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길이가 150m, 폭이 30cm밖에 되질 않는다.
이렇게 중간에 마주오는 사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무섬마을.
무송헌 종택.
사당이다.
위에 3장의 사진은 김위진 가옥이다.
무섬마을 제방에서 바라본 외나무 다리.
해우당 고택
이 건물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金樂灃, 1825~1900)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가옥이다. 문수면 수도리는 예안김씨(禮安金氏)와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집성촌(集姓村)으로 주변의 자연적 조건이 하회마을과 유사하다. 수도리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이 고택은 뒷산을 배경으로 북서향으로 터를 잡았다. 전면 대문칸을 중심으로 우측에 사랑채가 자리하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정침과 익사가 자리하는 폐쇄적인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정침부분은 6칸 큰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2칸 온돌방을 두고 수직으로 부엌 고방을 연결시켰다. 부엌상부는 안방에서 오를 수 있는 다락을 두었으며 고방은 우물마루에 빈지벽을 설치하여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다. 대청 좌측으로는 미닫이문으로 구획된 2칸 상방을 들이고 좌익사와 연결시켰다. 통래칸, 못방, 고방 3칸으로 이루어진 우익사는 결혼한 자녀가 사용하는 못방이 있어 나름대로의 독립성을 부여한 듯하다.
전면 대문칸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사랑을 꾸몄다. 좌측 2칸에 온돌방, 마루방을 두고 앞쪽으로 퇴를 내었다. 보통의 경우 마구나 행랑방 수장공간으로 처리하는 것이 통례이나 이 가옥의 경우 종가(宗家)인 관계로 사랑부분의 확장이 필요했던지 사랑공간을 확대시켰다. 우측 사랑은 좌측과는 달리 독립적이다. 바닥을 지반에서 4자 정도 높여 건물을 조성한 관계로 언뜻 다락집 형상이다. 앞쪽 4개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여 1칸반 대청마루를 내고 난간을 돌렸다. 그리고 뒤쪽으로 2칸 온돌방과 폐쇄형 마루방 3칸을 두었다. 온돌방과 마루방 사이에 4분합문을 달아 필요에 따라 3칸을 전통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후면에 2칸 책방을 내어 전체 8칸 사랑을 만들어 전면 3칸, 측면 2칸이 돌출되었다.
안채와 사랑부분은 5량으로 하고 양익사는 3량으로 처리하였다. 특히 안대청 상부는 판대공에 첨차를 삽입하여 종도리를 받게 한 부분이 독특하다. 망와에 ‘광서오월기묘유월일(光緖五月己卯六月日)’(1875)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건립 연대가 확실하며, 80여년 전 대홍수로 인해 일부 보수가 있었으나 북부지역의 민가평면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옥이다. -출처 다음백과-
1979년 세워졌다는 수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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