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은 순천만과 함께 남도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곽 안에는 '낙안민속마을'이라고 하여 민속촌이 있으며 단순한 전시용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과 함께 전통적인 촌락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읍성의 구조가 완벽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성문 중 온전하게 남은 것은 남문과 동문이며, 서문은 출입구만 남아있고 문루는 없다. 북문은 원래 없다. 그리고 성벽의 방어시설인 여장(성가퀴)이 상당부분 무너져 있고 그냥 큰 담벼락만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이다.성의 바깥쪽에 위치하는 옹성도 흔적만 남아 아쉬움이 크다.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내일로와 순천역이 연계되는 관광지라 방문객도 많고 유명하긴 한데, 막상 순천 시내에서 가기에는 쉽지 않다. 힘들고 길도 산길이라 좀 주의해야 한다. 자가용을 몰고 가면 40분 남짓 걸린다. 시내버스로는 순천시내~낙안을 최단거리로 이동하는 63번, 68번으로 와도 1시간이 넘게 걸리며, 이들의 배차를 합쳐도 하루에 20회가 채 되지 않아 배차간격도 좋지 않다. 61번이나, 16번의 경우는 종점을 '낙안읍성'으로 써붙이고 다니지만, 엄청나게 우회해서 간다. 그나마 16번은 선암사를 통과하기라도 하지, 61번은 그냥 마을 주민 전용 노선이다. 택시를 탈 경우, 순천시의 읍면지역 할증률은 40%나 되므로 택시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낙안읍성과 주요 관광지를 연계해 주는 순천 시티투어 버스나 남도 한바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벌교읍에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보성교통의 농어촌 버스가 벌교~낙안을 일 24회 운행한다. 택시를 탄다면 보성'군' 택시를 타는지라 요금이 도시 택시보다 비싸고 시계외 할증까지 붙지만, 순천시내에서 오는 경우보다 길이 가깝고 다만 외지인 입장에서 이 일대의 교통 중심지는 순천이므로, 일부러 벌교를 가지 않는 이상은 벌교를 통해 들어올 일은 없다. 다만 낙안읍성에서 순천 관내의 어느 다른 관광지보다도 벌교가 훨씬 가까우므로 연계 관광시 참고하면 좋다. 또한 벌교에서 순천까지도 88번이 자주 다닌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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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낙안 민속마을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가옥에 실제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좌측으로 주차장이 있고 낙안읍성의 정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앞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이 4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가 1500원으로 싸지 않으며 입장료에 비해 가성비도 떨어지는 편이다.
읍성의 정문이며 문앞에 검표소가 있는데 그렇게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았고, 이후 세종 9년 (1426년)에 방어를 보강하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경업장군이 낙안군수를 역임하던 시기에 현재의 성읍을 구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이는 군수 시절에 석성을 개축한 사례와 주민들의 임경업에 대한 존경심이 복합되어서 만들어진 야사로 추정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제 성곽에 올라 오른쪽으로 시작해서 한바퀴 돌것이다.
성벽에서 보이는 관아의 뒤쪽이다.
역시 관아의 뒷편이다.
걷기 좋기는 하다만 여장에 훼손된 성곽의 모습이 참 황량하고 못내 아쉽다.
100채에 육박하는 초가집과 옛 성곽, 낙안군 동헌(군청)과 객사 등이 남아있고, 성 바로 옆에는 1970년대에 발행되었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자 故 한창기 선생의 소장품들이 전시된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고, 또한 멀지 않은 곳에 국립 낙안민속자연휴양림도 있어서 이색 관광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관광지답게 바가지 요금이 따르니 필요 이상의 지출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부 물가도 비싸고 음식맛에 대해서도 혹평도 따른다. 다 보고 나면 순천시내나 벌교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좋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순천도호부와 별개의 고을이었던 낙안군(樂安郡)의 관아가 소재했던 곳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인해 1908년 낙안군을 폐군하고 둘로 나눠 현재의 벌교읍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성으로, 읍성을 포함한 나머지 지역은 순천으로 편입하여 지금에 이른다. 그리하여 낙안은 지역의 중심지 기능을 잃고 그저 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촌이 되어버렸으나, 읍성 주변이 개발되지 않고 오히려 원형의 모습을 더 잘 보존하여 시간이 지나 관광지로 가치를 얻었다.
다만 낙안읍성 내부의 전시시설에서 '낙안'을 낙안면으로만 한정하고 있고, 조선시대의 낙안군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매립해서 공단을 유치하려고 했다가 주민 간의 갈등 끝에 그냥 보존하기로 결정한 순천만도 있다.
가을이 오면 이런 모습이다.
뒤에 보이는 기와 건물이 옥사이다.
관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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