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 모실길은 생각보다 길다. 5구간에 거의 40km가 넘으며 시간도 빡시게 걸어서 가면 12시간은 잡아야 한다. 한마디로 하루에 다 완주하긴 어렵단 이야기이다.
그러니 슬로시티 답게 느리게 천천히 걸어 이틀에 걷는다면 충분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이틀에 걸쳐 증도 모실길을 쌔가 만바리 빠지게 걷고 걸었다. 증도 모실길의 전 구간에 산이라야 후반부에 있는 해발 50m 정도의 염전 전망대가 전부이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또하나 염전지역의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전 구간에 그늘이 별로 없다.
그러니 여름엔 마음 단단히 먹고 도전하거나 다른 계절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
또한 증도는 담양, 완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치타슬로(chittaslow, 슬로시티의 국제적 공식 명칭)’ 인증을 받았다. 1999년 ‘느리게 살자’라는 구호 아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국제적인 공용어는 ‘치타슬로’)은 국제연맹이 설립되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경쟁하듯 ‘더 많이, 더 빨리, 더 풍족하게’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좀더 느리게, 좀더 작게, 좀더 부드럽게’를 추구하며 영속성을 지켜나가자는 운동이다. 슬로시티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인구가 5만 명 이하여야 하고,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하며,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하는 등 수십 가지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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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의 가장 큰 볼거리는 태평염전이다. 우리나라 단일 염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전체 크기가 약 460만㎡로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한다. 1953년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만들었다.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생산 증대가 목적이었다.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연간 1만 6,000톤.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6%를 차지한다. 4월부터 10월까지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만들어낸다. 값싼 중국산 소금과 일본산 정제염(기계로 생산한 소금)에 밀려 대부분의 염전이 설 곳을 잃었지만, 이곳 태평염전만은 천혜의 자연 조건 덕택에 국산 천일염의 명성을 지켜오고 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3km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27개의 소금창고가 도열한 풍경은 오직 증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 새벽녘이나 해질녘에 특히 장관을 이룬다고 하니 시간 맞춰서 찾아보길 권한다. 태평염전은 그 자체가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360호)으로 지정돼 있다.
증도대교. 다리를 건너면 증도가 보인다.
이제 증도 모실길에 대한 본격적인 탐방을 시작하려 한다.
증도 모실길 1구간은 증도대교 끝 주차장에서 출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염산마을에 가면 밤하늘 수놓은 듯한 별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고깃배들이 드나들었다던 나룻구지, 목넹기 파시가 열렸던 하트모양의 해변을 지나 약2만여점이 발굴된 송,원대 해저유물 기념비에서 바라보는 서해안의 낙조가 아름답다고는 하는데 이 낙조를 보려면 저녁에 따로 가봐야 할 것이다. 물론 작지만 주차장도 있다.
주차장~구분포~염산마을~염산포구~방축~방축~나룻구지~노을쉼터~하트해변~해저유물발굴기념비까지 약 10km에 이르고 시간은 대략 3시간정도 잡아야 한다.
증도 모실길 1구간에서 보이는 증도대교.
이곳도 모실길의 구간의 일부이다.
실제는 앉아서 쉬고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개 넘어 돌아가면 신안 해저유물 발굴 기념비가 있다.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新安海底遺物埋藏海域)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 해역이다. 해역에는 14세기 침몰한 중국 원나라 무역선인 가칭 신안선(新安船)이 발견되었으며,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차례에 걸쳐 중국 송/원대 유물 22,000여 점이 발굴되었다. 발견된 유물은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와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었다.
1975년 한 어부가 고기잡이 중에 도자기 6점이 그물에 걸려 나와 알려지게 된 유적이다. 어부가 이듬해 1월 도자기를 신안군청에 신고했고 그 해 10월부터 발굴이 시작됐다. 증도면 방축리에서 서북방향으로 2,750m 지점의 바다 속에서 중국 원나라때(14세기경) 제작된 청자를 비롯하여 대외무역용의 많은 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이곳에 대한 대한민국 최초의 해저발굴조사는 1975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9년간에 걸쳐 모두 11차례 실시되었다. 조사를 통해 침몰된 배의 조각 445편을 비롯하여 도자기 20,661점, 금속제품 729점, 돌로 만든 제품 43점, 자줏빛자작향나무 1,017개, 동전 28톤18Kg, 기타 574점 등 총 23,024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 이외에도 약품, 일용품 등을 비롯하여 맷돌에서 바둑판에 이르기까지 당시 배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생활용품들도 발굴되어, 세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 발굴은 대한민국 수중고고학의 효시가 되었다. 이 조사로 13, 14세기의 남송에서 원대에 걸친 각종 도자기의 연구에 대하여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 동양의 원양항해선박인 무역선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유물은 수심 20m 안팎의 갯벌 바닥에 묻혀 있었으며, 산소 공급이 적어 대체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해역에 수장된 배는 1323년 중국 저장성 경원(오늘날 닝보시)에서 일본 후쿠오카 하타카항으로 가던 무역선으로, 풍랑이나 태풍 같은 기상재해를 만나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의 제원은 최대 길이 34m, 폭 11m, 중량 200톤의 대형 목선이다. 300여 점의 목간에 담긴 정보를 토대로, 중국 경원에서 1322년 4월 22일부터 6월 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하카타와 교토의 절(도호쿠지)이나 신사에 보낼 짐이 배에 선적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상류층 귀족이 다도와 꽃꽃이, 향 피우기, 장식을 위해 수입한 도자기와 향로, 금속공예품의 비중이 높다. 발굴된 도자기 2만여 점은 중국 저장성 용천요 생산품이 60%를 차지한다. 배에 실린 고려청자 7점에 대해 학자들은 중국으로 수출됐다가 항저우 일대를 방문한 일본인이 다시 사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4세기 동아시아에서 고려청자가 주요 교역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견된 장기판은 현존하는 일본식 장기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인이 탔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배 바닥에 깔린 고급 목재 자단목과 채워진 동전은 배의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였다. 동전은 무게 28톤으로 약 800만 개가 발견되었으며, 서기 1세기 중국 신나라 때 발행된 화천부터 1310년 원나라발행 지대통보까지 66건 299종이 확인된다.
이국적인 길이지만 조금 위험해서 주의해야 한다.
멀리 짱뚱어 다리가 보인다. 바로 옆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비가 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문준경은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임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씨의 3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총기가 남보다 뛰어났지만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부친은 준경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이 17세가 되는 1908년 3월 18일 정근택이란 청년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20년을 아내를 돌보지 않았다. 남편있는 생과부가 된 그에게 시아버지는 한글을 가르쳐주었고 결혼 20년만에 돌아가셨다. 시부가 돌아가시자 그는 큰 오빠가 있는 목포로 가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전도자를 만나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만나자 마자 의기투합해 함께 지내며 울음을 쏟아 놓았고 이 때부터 목포 북교동교회에 발을 내 딛었다. 북교동교회 이성봉 목사가 시무했고 문준경은 입교하고 6개월만에 학습세례를 받고 1년만에 집사가 되었다.
문준경은 그뒤로 친정에 가서 부모에게 예수를 전하다가 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오면서도 왠지 슬프지는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녀는 세상의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준경은 1931년 상경하여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6년을 졸업할 때까지 도서지방 순회전도사가 되어 교회 셋, 기도처 셋을 세우고 성서학원을 25회로 졸업하면서 소실과 함께 사는 남편이 있는 임자도를 첫 번째 개척지로 삼았다. 버린 남편이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를 전도하면 그녀의 목회가 방해받지 않을 것이란 신념때문이었다.
그는 졸업하고 다도해 773개 섬중에 122개 섬을 떠돌며 1년에 고무신을 9켤레나 떨어뜨리면서 목회를 했다. 그의 전도의 특징은 섬마을 사람의 생활속에 들어가 함께 우는 전도를 했다는 것이다. 전염병으로 죽으면 염을 해주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가 발생하면 즉시 찾아가 위로해주고 육지를 오고가며 섬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짐꾼이 되어 주었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는 신던 버선이라도 벗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자 같은 섬에 목회하던 양도천 전도사, 백정희 전도사를 다른 섬으로 피난을 시키려 했는데 배를 타려는 순간 공산 폭도들이 몰려와 두 전도사를 두들겨 패어 파죽음을 시켜 놓고 죄질이 나쁘다며 문준경, 양도천 , 이봉서 세 전도사는 목포 분주소로 옮겼다. 9월 28일 배가 목포에 도착하니 인공기는 사라지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내무서원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하였다. 그들 일행이 떠나는 날 밤, 중동리 무수한 양민이 공산폭도들에의해 학살을 당했다. 하나님이 세 전도사를 빼내서 살리신 것이다.
문 전도사는 그길로 은신하고 있는 이성봉 목사를 찾아갔다. 난리 후에 중동리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이 목사가 만류했는데도 문 전도사는 "저때문에 무고한 성도 한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더구나 백 전도사가 대신 붙잡혀 옥고를 치를텐데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중동리로 돌아가 내무서를 찾아가 백 전도사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해서 백 전도사는 풀려나 순교한 문 전도사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루어주었다.
전라남도 신안군 중도면 중동리에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 예배당이 아담하게 서있다. 그녀가 생전에 목회한 교회에서는 10명의 목사가 배출되어 순교 그루터기로 우뚝 섰다. 이만신, 이봉성, 이공신, 이만성, 이경순, 이인재, 안승갑, 박훈용, 박문석, 김신배 목사가 그들이다. -출처 문준경 순교 기념관 http://www.mjk1004.org -
기념관 내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에서 2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지금은??
짱뚱어 다리. 건너편이 우전 해변이다.
짱뚱어 다리 뒤로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이 보인다.
우전해수욕장 북쪽 끝에는 갯벌이 있다.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으로 422만 4,000㎡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이 갯벌에 길이 470m의 일명 짱뚱어다리가 놓여 있다. 갯벌을 탐방할 수 있도록 갯벌 위에 만들어둔 다리다. 다리 아래 짱뚱어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철제 구조에 널판을 댄 모양새가 예쁘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에는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물이 빠지면 짱뚱어, 갯지렁이, 칠게, 농게, 맛조개 등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 체험 명소가 된다. 다리 중간쯤에 갯벌로 내려가는 계단도 설치되어 있다. 다리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일몰도 아름답다.
우전 해변쪽에서 본 짱뚱어 다리
우전해변
해변에서 보이는 엘도라도 리조트
증도의 가장 큰 자랑 "갯벌"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 갯벌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다.
대초리와 화도를 잇는 노두길은 만조시가 되면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에 물때를 잘 보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해질 무렵의 화도에서 바라보는 작은 무인도들은 찰랑이는 바닷물에 떠있는 바다의 북두칠성과 같이 아름답다.
장혁과 공효진이 나왔던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증도와 화도는 1.2km의 노둣길로 연결되어 있다. 노두는 개펄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징검다리다.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을 가다 보면 짱뚱어를 낚시로 잡는 홀치기 광경도 볼 수 있다. 섬이 작아서 승용차로 30분이면 너끈히 돌아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길이 평탄해 그다지 힘들지 않다.
화도.
신안 증도 갯벌 도립공원 표지석
이제 염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 보이는 나즈막한 산에 전망대가 있다.
소금밭 전망대 오르는 계단.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평염전.
염전 입구에 자리한 소금박물관. 건물은 염전 초창기에 실제로 사용했던 석조 소금창고를 개조한 것이다. 요즘 소금창고는 대부분 목조인 데 비해 돌로 지은 모양새가 이색적이다.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소금의 역사와 제조 과정, 문화 등 소금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소금 생산에 필요한 도구, 소금으로 만든 돌고래와 꽃게 조각품 등 재미있는 볼거리도 많다.
염전 안에는 염전체험장과 염생식물원도 있다. 염전체험장에서는 직접 결정판에 들어가 소금을 긁어모으는 대파질을 비롯해 물레방아 같은 수차로 소금물을 퍼 올리는 체험도 가능하다. 염생식물원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220m의 목재 관찰 데크를 따라가며 자연 갯벌에 자생하는 갖가지 염생식물 군락지를 관찰할 수 있다. 함초(퉁퉁마디),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 군락과 함께 오염된 습지에서는 자랄 수 없는 띠(삐비)가 물결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염생식물은 소금기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총칭한다.
소금 박물관 그리고 앞에 보았던 소금밭 전망대가 보인다.
소금 박물관과 소금밭 전망대.
태평염전에서 보이는 증도대교.
엘도라도 리조트. 리조트 뒷편에 우전해변이 있다.
엘도라도 리조트에 일몰을 바라본다.
엘도라도 리조트 내부. 각 동과 평수에 따라 구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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