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히 흐르는 섬강을 벗 삼아 가을이 누렇게 익어가는 전원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거기에다가 탐방로 곳곳에는 문화역사의 숨결을 또한 느낄 수 있으니 가을여행치곤 제법 훌륭하단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남한강변의 자전거 족들을 빼면 사람도 없어 한적하기 그지 없다. 고려시대 13개 조창중 하나인 흥원창, 통일신라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절터인 법천사지, 신라말~고려초의 절터인 거돈사지, 조선시대 병자호란때의 명장 임경업장군 추모비 등 이 있어 탐방로 구간을 걸으면서 원주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을 느끼며, 역사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난 특별히 법천사지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폐허처럼 융성했던 건물들과 사람들은 어디가고 발굴현장의 흔적만이 남아 먼지가 ..
앞에서도 몇번씩 이야기를 했지만 내같은 저질 체력으로 산을 오른다는 것은 모 거의 목숨을 건 모험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악’소리 들어가는 산은 매우 험하고 정말 ‘악'소리가 난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라 이래 보면 설악산을 비롯해서 하다못해 관악산까지 늘 미루고 미루다가 오른 듯 싶다. 글고보니 내가 뭐 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산악회등에도 가입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갈 때가 없어서 하루 값싸게 소비하는데 산처럼 만만한 곳이 없다는 결론에 따라 종종 산을 찾고 있을 뿐이지만 늘 한결같이 산을 오를때는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한번도 안해본 적이 없다. 이번 치악산도 가장 만만하다거나 뭐 사전 지식없이 그저 검색에서 제일 힘들지 않을만한 코스를 택하여 엥간하면 힘들지 않게 다녀 오려고 무던히 애를..
행주산성은 서울에서 매우 가까이에 있으며 자유로를 따라 일산이나 파주쪽으로 가다보면 늘 왼쪽 언저리에 보이곤 한다. 물론 행주산성 인근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고 이중의 몇몇 식당은 가성비가 아주 뛰어나기도 하다. 또한 어느 카페에 가면 커피한 잔 앞에 놓고 노을 구경하기 아주 좋은 곳이 있어 한번씩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만 행주산성은 아주 작다. 또한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처럼 거나한 성문도 성벽도 없으며 단지 이곳이 토성임을 보여주는 흙무더기만이 몇군데 이어질 뿐이다. 어쩌면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을 상상했다면 지극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남한산성이 인조의 항복으로 굴욕의 장소가 되었다면 이 행주산성은 우리의 위대한 승리와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이란 의미에서 아주 소중한 유적..
북한산은 작은 산이 아니다. 남한산성처럼 안으로 버스가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산세 또한 매우 험하여 성벽을 따라 전구간을 걷거나 하기도 매우 힘들다. 어차피 성문 중의 일부는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바로 코앞에 있으니 산성 탐방이라기 보단 그냥 등산을 한다~ 생각함 될 것이다. 그래서 산성만의 탐방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안그럼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선수가 아닌 이상 무심코 여타 다른 산성이나 성곽을 생각하고 슬슬 걷겠다 생각하며 북한산성에 달려들면 식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루에 북한산성의 성문을 다 탐방하기보단 이틀에 나누어 여유있게 탐방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또한 다른 국립공원 주차장과 다르게 일 정액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온종일 주차 했다간 주차요금의 압박을 심하게 느낄 수도..
군산 구불길 6-1길을 군산 탁류길이라고도 한다. 구불길은 총 8개 코스로 군산시내와 일대의 섬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중에 지난번에 8코스인 고군산길은 이미 올린 바 있다. http://jail6039.tistory.com/129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인 군산의 원도심을 중심으로 일제강점 시대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삶의 애환을 경험하며 과거를 되돌아 보는 길이다. 군산의 근대역사 벨트화 사업으로 조성된 각종 전시 관람 시설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고 맛집이 밀집되어 있다.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지가 밀집되어 있는 군산의 원도심은 가까운 곳에 역사적의 숨결과 문학이 베어있는 곳으로 우리 한민족의 아픔과 항쟁을 배우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남원을 처음 찾은 것은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이 남원 바로 아래 있는 주천에서 1코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겠다고 마음 먹고는 남원을 찾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숙박을 위한 지나침이었지 남원에 대한 어떠한 호기심도 관심도 사실은 가지질 못했다. 남원하면 그저 광한루와 추어탕. 그것이 기억에 있는 남원의 전부이기도 하다. 광한루라는 유명한 명승지가 있음에도 남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은 광한루가 춘향전이라는 소설에 가려 있어 광한루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춘향전의 배경 이상으로 광한루를 기억해내지 못한 것은 그만큼 춘향전이 우리내 정서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광한루는 단지 춘향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라 역사속에 실존..
팔영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어쩌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산이라서 더욱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서남해안과 해상지역을 합해 1981년 14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또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는 해상왕국을 건설한 장보고의 유적과 이순신장군이 왜적을 격파한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하여 그 역사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전라남도 고흥반도에 우뚝선 팔영산은 말 그대로 8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말해 8개의 암봉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오르게 된다. 해발 608m라고 우습게 봤다간 시껍할 수도 있다. 산이라는게 죽어라 올라 정상에 도착하면 하산길은 그래도 내리막이라는 희망 하나에 의지하여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팔영산은 이런 기대와 희망을 여지없이 조각내곤..
강진은 북으로는 영암의 월출산을 그리고 해남과 장흥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래서 강진은 완도와 해남, 장흥을 방문할때면 한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여러 왕족과 양반들이 귀향을 갈때면 많이 거쳐야 하는 곳이고 이런 왕족과 양반들을 따라서 내려온 가솔들에 의해 강진의 한정식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몇번에 걸쳐서 한 기억이 있다. 茶山草堂은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문화재이며 사적 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강진만과 바다건너 천관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이름의 초당(草堂)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난 뭐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런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한번쯤 보여주고 싶은 곳이란 말을 즐겨 쓰는데 대한다원의 녹차밭이 그렇다. 대한다원 녹차 밭은 마치 녹색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 장관을 이루어 멋진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한다. 그림 같은 차밭 사이를 지나 해발 350m 봉우리에 오르면 저 너머 바다까지 펼쳐지는 풍경이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 드라마 여름향기, 푸른바다의 전설, 역적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아래의 다양한 코스가 있어 다원을 자신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있으나 꼭 이코스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다원을 걸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입장료는 성인이 4000원이며 여름철에는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1코스 (20분소요) : 매표소 - 삼나..
순수 관광 목적으로 전주를 방문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경기전과 한옥마을, 그리고 한옥마을에서 먹었던 밋밋한 한끼 식사, 그러곤 서둘러 그 번잡한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기억, 그것이 전부이고 그렇게 전주는 내 기억에서 친구가 사는 동네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전주를 일을 만들어라도 다시 가보고 싶고 그렇게 가서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게 만들었던 것이 이 팔복예술공장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예술을 안다거나 크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난 사실 예술을 모른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 작가라는 사람들은 나와 한발자국 떨어져 사는 사람들로 여겼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더 관심을 갖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을 알아서가 아니고 예술을 이해해서는 더더욱 아..
앞에 곡성에 가야하는 이유에서 곡성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명승지도 거나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곡성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것을 다듬어 보여주는 능력을 지녔다. 곡성은 관광객을 호구나 돈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주는 고마운 손님으로 대접할 줄 아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곡성에서 조금만 머무른다면 이내 알게 되리라 믿는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제 그들의 노력과 정성에 우리가 응답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곡성의 기차마을은 1999년 4월 군 역점시책중 하나인 치포치포 섬진강 나들이 관광열차 행사가 시작된 이래 고달면 가정리가 곡성군 관광명소로 새롭게 부상했다. 옛날에 실제로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여 옛 곡성역(섬진강 기차마을)..
곡성은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지도를 찾지 않으면 잘 모르는 곳이기도 했다. 주변에 무슨 유명한 산이 있나, 거나하게 내세울 문화재가 있나~ 그렇다고 딱히 뭐 즐길 거리가 있나~ 교통의 요지이길 하나~ 그랬었다. 어쩌면 곡성은 위로 남원과 아래로 구례에 치여 시골이라는 이름으로 소외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곡성의 기차 마을을 가보면 한편으로 어거지로 꾸며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곡성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그것을 어거지가 아닌 정성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산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어쩌면 이제 나름 유명세를 탄 기차마을이 아니라 조금 나아가 섬진강가에 이르면 진정성있는 곡성의 가치를 알게 된다. 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