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작고 조용한 마을에 사람들은 뜨문뜨문 오가고 시대극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판교마을이 복고풍 여행지로 새롭게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 방송사에서 소개되면서 레트로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판교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흡사 드라마 촬영장을 온 듯한 느낌이었다.
선로 직선화 사업으로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았던 판교역이 밖으로 밀려나자 외지인들의 발걸음은 뜸해졌고, 젊은 사람들도 밥벌이를 위해 도시로 나갔다. 마을은 이제 70년 된 정미소, 2000년 12월에 멈춰진 달력이 걸려 있는 주조장, 지금은 도토리묵 공장이 돼버린 낡은 극장 등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건물들과 도시로 자식을 떠나보낸 어르신들만이 지키고 있다. 마을은 어느덧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동일주조장은 2천 년도까지 술을 만들던 공장이다. 판교마을에 사람이 많았던 시절 주막에 술을 공급하던 중요한 곳이다. 쌀이 귀했던 시절, 세수 확보 차원에서 가정에서 술을 담그면 밀주로 단속하면서 주조장을 통해 밀가루로 막걸리를 제조해 판매했다. 그 후 “통일벼”의 보급으로 쌀 자급자족이 원활해지자 “쌀 막걸리”가 보편화되기도 했다. 동일 주조장은 막걸리 재료인 쌀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쌀 방앗간과 같은 역할로 박 씨네가 3대째 운영했다. 동동주, 탁주, 농주, 왕대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담고 있는 술로 허기를 채우는 곡주다. 동일주조장 창문은 쇠창살로 막아놨고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 있다. 대문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문 아래는 양철로 덧대었다. 주조장 안이 궁금했지만 굳게 잠긴 문은 출입을 막고 있다.




방앗간을 지나면 일본식 가옥인 장미사진관이다. 장미사진관은 이층구조의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다. 당시 판교면을 통치한 열한 명의 일본 부자들은 조선인에게 쌀을 빌려줄 때 일본말을 시켰다고 한다. “텐노오하이 카반자이(천항패하 만세)”, “베에오 카시테쿠다사이(쌀좀 빌려주세요)”라고 하면서 일본인 지주에게 외치거나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 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동면”에서는 일본사람 스스로 “본토인”이라고 말하고 우리 민족은 “조선인”이라 하며 온갖 만행을 자행했다. 일본인은 남자 다섯 명, 여자 여섯 명, 총 열한 명이 동면 사람들 5천5백15명을 쥐락펴락하며 농토와 상권을 장악했다. 나라 잃은 설움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통곡할 일이다. 해방 이후엔 우시장과 세모시를 거래하는 장이 열릴 때 상인들의 숙소로 사용하다가 한참 뒤 장미사진관으로 용도가 바뀌어 사용됐다. 지금은 건물만 그대로 남아 당시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장미사진관과 함께 있는 판교시장은 너무 작아서 시장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리고 가마솥에서 김이 펄펄 나며 끓고 있는 것이 앞으로 돌아가서 저 가게의 간판을 보고 기겁을 했다. 보신탕이다.











음식 특화 거리라 해서 특별한 건 없다. 작은 시골마을에 몇몇의 음식점과 상점들이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옛 판교역을 그대로 옮긴 세트는 정겨웠다. 판교역은 일제강점기 때 식량약탈과 징용, 징병, 위안부 수송을 위해 장항선을 개통하면서 들어섰다. 예부터 서산팔읍이라고 해서 서천, 비인, 한산, 홍산, 임천, 부여, 공주, 남포 등 보부상들의 육로였던 서천은 염판교리 판교장의 이름을 따서 판교역이라고 했다. 해방 후 “판교역”은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한국전쟁의 아픔도 겪었던 역이다.



학생들의 통학열차와 희망과 꿈을 안고 외지로 떠나는 이들의 탈출구였다. 판교역은 1931년 11월에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2008년 지금의 판교역으로 이전했다. 옛 판교역은 “판교특화음식촌”으로 사용 중이다.



판교역에서 오백 미터쯤 가면 오성 초등학교를 지나 고석주 선생 기념 공원이다. 고석주 선생은 일제 강점기때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에 몸담은 언론이고 학교 선생이었다. 그 후 하와이에서 돌아와 군산에 거처 하면서 3.5 만세 운동을 참여해 옥고를 치른 뒤 판교마을에 정착해 농촌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 판교마을에서는 독립운동가 고석주 선생의 기념 공원을 세웠다.



옛 정미소인 오 방앗간으로 가는 길목에 “서울 시계점”이란 간판이 남아 있는 집을 만났다. 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시계점을 복고풍 여행지 판교마을에서 만났다. 문명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사람의 감성은 과거의 추억으로 회귀하려는 본성도 함께 진화 하나보다. 서천 판교마을이 추억을 자극하는 레트로 여행지로 관심을 끄는 것으로 충분히 검증된다. 예전엔 도심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시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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