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에 정상부에 있는 적성산성(赤城山城,사적 제265호)이다. 이곳은 조령(문경새재)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길을 지키는 산성이다. 남한강 북쪽에서 죽령을 향하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산성내에 가장 오래된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국보189호)가 있고, 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 전경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교통로인 죽령이 멀리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원주방향 상행선 단양휴게소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여행 중에 단양휴게소에 들르는 경우라면 한번 올라가 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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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은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재산 정상부에 석축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900m 정도이다. 성벽 바깥으로도 경사가 심하여 공략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적성산성은 성산성이나 산성으로 불리다가 1978년 1월인근 성내에서 단국대학교학술조사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비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석은 높이 93cm, 상단폭 109cm, 하단폭 53cm의 화강암으로 전면에는 1.5cm, 3cm의 예서체로 모두 282자가 음각돼 있다. 발견된 비는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로 명명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의 비석으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 놓은 것이다. 비석 외에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비는 적성의 성격이나 축성 주체·목적·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늦어도 신라 거칠부(居柒夫)의 10군 공략이 이루어지는 진흥왕 12년(551) 이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성은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가 남한강 상류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활용하고자 쌓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평가된다.
땅속에 묻혀 있어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글자가 또렷하게 보인다. 비석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지역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라고 하며. 유명한 장군 이사부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성재산 정상부을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900m 정도이며, 북동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붕괴되었는데 최근에 대부분 복원하였다. 석축은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았는데 보은의 삼년산성, 서울의 아차산성과 비슷한 신라계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산성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당시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경쟁을 벌렸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적성산성 아래에는 조선시대 단양군 읍치가 있었으며, 고려시대까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읍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적성산성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넘는 주요 교통로인 죽령과 소백산이 보인다.

적성이 자리한 단양 지역은 신라시대에 적성현(赤城縣)이 위치하였다. 적성에 대해서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둘레가 1,768척이고 안에는 큰 우물 1개소가 있다”고 하면서, 원래 성산(城山), 성산성(城山城), 고성(古城) 등으로 불렸다고 기록되었다.『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주민들이 민보성(民堡城), 농성(農城)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78년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 국보 제198호)에는 이 산성을 적성(赤城)이라고 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이 산성이 법흥왕·진흥왕 때 신라가 죽령(竹嶺)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요충지로 이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성 안에서는 신라 토기와 기와 조각이 주로 확인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 토기 조각과 고려시대의 토기·청자 조각도 출토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맥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동쪽은 죽령천(竹嶺川), 서쪽은 단양천(丹陽川)이 북쪽으로 남한강에 합류하여 3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자연 해자를 이루고 있다. 남동쪽으로 4.5㎞ 떨어진 곳에는 공문성(貢文城)이 자리하고 있고, 서남쪽으로는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가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는 벌령(伐嶺)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

조선시대 성곽과 달리 성벽 위에 여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전투시 목책을 성벽 위에 쌓았을 것이다.

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산성에서 보이는 남한강 지역은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지만 수양개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구석기시대 이래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려시대까지 단양군 읍치를 방어하는 읍성 역할을 했으나 그 이후 북동쪽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허물어졌다. 최근에 인근 보은 삼년산성을 참조하여 옛 성벽을 거의 복원하였다.
산성은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말 안장 모습을 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북서쪽은 경사가 급하고, 남동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 안은 서고동저(西高東底)·북고남저(北高南底)의 지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깬돌을 안팎을 포개며 엇물린 내외협축(內外夾築)의 방식으로 쌓았다. 북동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는데, 높이는 3m쯤 되며, 남서쪽·남쪽·동남쪽 성벽에는 성문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성의 북쪽에 남한강이 흐르고 강 주변이 가파른 절벽이므로, 자연적인 지리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성벽과 성 안에서는 여러 시설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주변에 많이 분포하는 화강암과 석회 암반 등을 잘라 확보한 깬돌과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지형에 따라 돌의 재질과 크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북쪽벽에서 남쪽벽으로 낮아지며 돌아 나가는 동쪽 끝부분은 완만한 경사지로, 가장 쉽게 성벽에 접근할 수 있는 취약한 부분인데, 문터가 있었다가 메워진 흔적이 남아 있다.
문터 안쪽에는 투석용으로 추정되는 석환(石丸) 무더기가 있다. 성벽의 서쪽 끝부분은 매우 가파른 지형임에도 능선을 따라 곡성(曲城) 형태의 치(雉)를 두었다. 치 아래에는 단면이 삼각형인 보축 성벽이 남아 있어 동쪽 끝부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곳에는 문구부 시설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 상태로 보아 문구부의 너비는 6.4m 이내로 추정되며, 이 구간의 성벽 아랫부분에는 들여쌓은 계단식 축조 방법이 확인되었다.
남쪽 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남향한 경사면의 중간 부분을 다듬어서 바깥면에 돌을 쌓았고 안쪽에는 돌을 메워 축조하였다. 산성에서 가장 낮은 남동쪽에는 윗부분에 이르러 내외협축하였는데, 성벽의 기울기는 75∼80°정도이며 벽면이 정연하지는 못하다. 이곳에 문터와 수구(水口)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으로 진입하는 출입구는 모두 남쪽벽에 있지만 지표상에서 문터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두 출입구 사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낮아지는 궁형(弓形)으로 성벽이 돌아가고 있으며 동쪽 끝부분과 서쪽 끝부분을 평지로 연결하는 가장 넓은 환도상(還道狀)을 이루고 있다. 북쪽벽은 환도상의 평탄한 서반부와 동향으로 경사진 동반부로 나누어지지만, 군데군데 성벽이 붕괴된 채 남아 있다.


적성산성(赤城山城)은 흔히 단양 적성으로 불리는데 충청북도 단양군의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사적 제 265호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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