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에 올라서라’란 노래 가사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경주엔 토함산만 있는줄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경주의 유명한 불국사와 석굴암이 모두 토함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주 남산이 관심에서 멀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토함산은 좀 장대하고 상당히 귀족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당장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더라도 그곳은 단순히 종교적 시설을 떠나 국왕의 왕권을 상징하며 그 권위를 세우기 위한 면모를 지녔고 아울러 왕실의 전폭적 지지와 후원속에 유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주 남산을 가보면 지극히 서민적이고 그곳에서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불교를 대하며 불교가 종교의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백성들 사이로 스며 들어 존재하고 유지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경주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 한다. 남산을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 하리라 믿는다.
사실 곳곳에 산재한 불상과 부조물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 가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실내 박물관이나 어떤 웅대한 시설물앞에 입이 쩍 벌어지는 감탄은 없을 지라도 다 부서진 불상 조각과 바닥에 나뒹구는 석탑의 돌조각 하나에서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소망과 간절함이 보이기 때문에 난 남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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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의 상징과도 같은 탑이다. 뒤에 다시 설명이 될 것이다.
경주 남산은 다양한 코스가 있고 또한 동쪽과 서쪽으로 따로 걷기 길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번엔 삼릉으로 해서 용장사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삼릉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시작된다.
삼릉 입구에 이렇게 보기 좋게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산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아래를 보면 3D 모형까지 있으니 달래 국립공원이 아니다.
사적 제219호. 남산(南山)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리고 있다.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나무데크는 정말 걷기가 좋을 뿐더러 주변 경관을 해치치 않아 좋지만 아쉽게도 곧 끝난다.
나무데크가 끝나고 이런 길이 이어지지만 이 길도 나쁘지 않다.
남산을 오르다보면 산 각지에 흩어지고 버려졌던 석탑과 불상들의 잔재를 모아 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안타깝다.
이곳 남산이 다른곳과 다른점이 있는데 이 안내 이정표의 아래 노란색 글씨이다. 위의 흰색 글씨와 다르게 노란색으로 표시된 것은 바로 문화재의 위치와 거리를 안내하기 위함이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도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마애관음보살상이라 한다.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출처-위키백과-
앉아 있으니 당연 좌상이다. 삼릉 석조여래좌상 이라한다.
높이 1.6m, 무릎 넓이 1.56m 규모의 석불좌상으로,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답사팀에 의해 현재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30m 떨어진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머리 부분이 결실되고 양쪽 무릎도 파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특히 가사의 유려한 주름과 왼쪽 어깨와 가슴 중앙의 매듭, 무릎 위로 흘러내린 매듭 끈 등이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각육존불이라 한다..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선각 육존불을 좀더 가까이 가서 보았다.
선각여래좌상이다.
각도를 달리해서 본 선각여래좌상.
아무리 동네 뒷산 같아도 산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계단의 압박은 피할 수 없다.
경주 시내는 아니고 보이는 강이 형산강이다.
멀리 희미하게 나마 경주 시내가 보인다.
다른 동네와 다르게 가옥들의 지붕이 거의 기와로 된 것이 경주만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멀리 보이는 경주 시가지.
아래 사진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의 해설.
마애석가여래좌상.
남산(南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탑동, 배동, 내남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북쪽의 금오봉(金鰲峰, 468m)을 금오산(金鰲山),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494.6m)을 고위산(高位山)으로, 각각 독립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보물 제913호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등 불상 80여 체, 탑 60여 기, 절터 110여 개소가 산 곳곳에 흩어져 있다.
드디어 용장사지로 간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용장사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용장사곡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상(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은 경주시 남산 용장사곡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석조 여래 좌상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용장사터에 있는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된다.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으며, 대좌에 비해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지어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은 경주시 남산 용장사지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마애불 좌상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9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바로 뒤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판독이 아직 되지 않았나 글자 10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위키백과-
용장사가 있던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란다.
사진 가운데 아주 작게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보인다. 숨은그림 찾듯 보면 보인다.
경애왕릉 들어가는 길이 아주 호젓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작년의 경주와 이번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우리의 문화재의 보존에 더 애를 써야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대비하여 천재지변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이나 손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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