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는 이따금 경부선 열차를 타고 여행할 때 지나는 그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청도 소싸움이 자주 방송에 등장하고 전통이니 어쩌니 하지만 복싱 이상으로 보기 싫은게 소싸움, 투견등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서로 싸움을 붙여 놓고 구경하는 것처럼 잔인하고 꼴보기 싫은 일도 없다. 그래서 복싱 경기도 싫어하고 재미도 없다. 그러니 청도에 소싸움이 유명하다고해서 딱히 관심이 갈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대구 부산 민자선이 건설되면서 이 구간에 유일한 휴게소인 청도 새마을 휴게소에 한번씩 들리면서 청도의 존재가 다가 오긴 했다.
하필 휴게소에 새마을이란 단어는 왜 썼나 했더니 우리나라에서 청도의 신도마을이 처음으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난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에 가면 새마을 발상 기념관도 있다는 데 별로 가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오직 청도에 복원중인 읍성이고 그 읍성이 온전히 복원되길 바랄 뿐이다.
청도 읍성은 청도군 화양읍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석성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청 서쪽에 위치한 화양읍 내의 동상리와 서상리 일원에 위치한다. 주변에 하양읍사무소, 청도 향교 등이 있다. 청도 IC에서 청도 방면으로 진행하여 모강 사거리로 우회전하면 모계 고등학교 뒤편을 지나 국도 20호선과의 교차로에 이르게 된다. 국도 20호선을 따라 각남면으로 진행하면 화양 삼거리에 이르는데, 여기서 좌회전 동상리 방면으로 진행하면 화양읍사무소 이르기 전에 청도읍성이 보인다. 청도읍성 입구 좌측에는 주차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걸어가는 거 아니면 그냥 네비 찍으면 알아서 데려다 준다.
청도읍성은 고려 말에 토성으로 초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기록으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1년(선조 24)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국 읍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때 크게 수축했다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큰 폐해를 입었고, 그 이후 성벽 및 성문 등의 시설이 건립과 소실을 반복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현재 전체 둘레 대략 1.8㎞, 면적은 약 20만 1090㎡가 확인된다. 동쪽 성벽 일부만 1995년 1월 14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또한 청도읍성은 조선 초기에 이미 석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1589년(선조 22)에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정세의 위급함을 조정에 알리자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대로변에 접한 주군(州郡)의 성지(城池)를 수축하라는 왕명에 따라 1590년(선조 23)에 군수 이은휘(李殷輝)가 2년에 걸쳐 개축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 뒤 1669년(현종 9)에 군수 유비(兪秘)가 서문인 무회루를 건립했고, 동문인 봉일루는 1708년(숙종 34)에 군수 임정(林淨)이 건립했다. 한편 1870년에 군수 김이교(金履橋)가 남문인 진남루을 건립함으로써 4성문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청도읍성의 규모는 둘레 1,880m[1,570보], 높이 1.7m[5척 5촌], 성첩 600첩이라 기록되어 있다.
1920년경 일제가 성내 신작로를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성문과 성벽을 헐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화강지 축조 시에 성돌을 제방 축조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로써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정밀 지표 조사 및 복수[복원] 정비 계획안 수립을 거쳐 2006년부터 연차적으로 동문지, 북쪽 성벽 일부 및 북문지 등의 발굴 조사를 거쳐 복원 정비되었다. 2010년에 북쪽 성벽 치성과 성내지, 남문지 등의 발굴 조사를 하고, 북쪽 성벽 일부 구간을 복원 정비 중에 있다.
청도읍성은 청도의 진산(鎭山)인 남산[829m]에서 청도천으로 뻗은 두 줄기의 능선 사이에 남고북저(南高北低), 동고서저(東高西低)한 해발 100∼122m의 구릉지와 일부 평탄지에 축조된 전형적인 평산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전방으로는 비슬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청도천과 양안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평면 형태는 동서간 직선거리 약 930m, 남북간 직선거리 약 870m로 장방형이다.
성벽은 화양읍 주변의 개천과 산에서 채집한 돌로 축조했다. 축조 수법은 바닥에 잔자갈의 기초를 깔고 그 위에 납작한 지대석을 1단 놓은 뒤 성돌을 올렸다. 성돌은 지대석보다 안쪽으로 약 20㎝ 가량 안으로 들려 아랫단부터 윗단으로 가면서 작은 크기의 성돌을 거의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체성은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교대로 허튼층쌓기를 했고, 쌓기 중간에는 쇄기돌을 박아 구조성을 높였다. 체성 내부는 흙 없이 돌로만 내부를 채웠다. 잔존 상단 너비는 4∼5m, 내단은 완만한 경사의 법면으로 처리한 듯하다. 적대와 치성은 체성 축조와 동시에 축조했고, 축조 세부 기법은 체성과 동일하다.
2012년 현재 동쪽 성벽 일부만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1995년 1월 14일]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그 외 성벽 구간은 민가 및 경작지 등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되어 간헐적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2009년부터 매년 청도읍성 동문에서 북문까지 복원되어 244m 구간에서 한 줄로 청도읍성 밟기를 진행하고 있다.
성 안팎으로는 당시 지방 행정 시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청도 석빙고[보물 제323호], 청도 동헌[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3호], 도주관[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07호], 청도 향교[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07호], 청도 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109호] 등 당시 지방 행정 및 지역사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학술 조사 결과, 청도읍성은 성벽·치성·적대·문지 등이 확인되었다.
임진왜란 직전에 지방 행정 및 군사적 목적으로 기존 토축성을 석축성으로 수축한 성이다. 수많은 읍성이 근대화 및 도시화로 인해 거의 사라진 상태이나, 다행히 성벽 및 주요 시설이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군사 시설로서의 읍성 구조와 형태를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객사, 동헌, 청도 향교, 석빙고, 척화비 등이 잘 남아 있어, 당시 지방 행정 시설의 배치와 구조를 가늠할 학술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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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답게 아담하며 둘러보기엔 더없이 좋다.


읍성 주차장 바로 앞인 관계로 제일 먼저 만나는 풍경이기도 하다.

화실표가 석빙고를 먼저 둘러보라 한다.

청도 석빙고(淸道 石氷庫)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빙고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나라 보물이고 경주 석빙고에 이어 두번째란다.




어딜가도 이렇게 각종 비문들을 한데 모아 놓곤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문경새재와 공주 공산성이다.






오래도록 보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복원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나마 이렇게 복원을 시작한 것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리로 성벽을 이어 놓은 것이 특이하고 청도읍성에서만 볼 수 있다.





원안에 있는 건물이 옥사라는데 이것도 참 특이하다. 성밖에 둘러쌓아 만든 옥사.






앞에서 이야기한 성밖의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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