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을 처음 간 것이 아마도 중2때로 기억된다. 오래됐다. 그러곤 대학때 두번 정도, 회사생활 할때 무슨 등반대회에 한 두어번.. 그러고 보니 내처럼 산 싫어 하는 사람이 계룡산은 많이도 갔다.
그러면서도 정작 계룡산의 관음봉이라던지 연천봉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기껏해야 갑사나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경유해서 넘나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번에는 갑사에서 시작하여 연천봉 관음봉 그리고 삼불봉과 금잔디 고개를 돌아 다시 갑사로 내려오는 수순이다.
늘 산에 갈때마다 빠지지 않는 생각이 “내가 미쳤다”는 것이다. 이 힘든델 왜 왔나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간이 허락할때마다 그나마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산에서 느끼는 감동에 대한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늘 아쉬운 것은 그때의 감동을 내가 가진 재주로는 도무지 다른이들에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에지간하면 한번 가보시라구~” 이말 밖에는~
계룡산(鷄龍山)은 충청남도 공주시와 논산시, 계룡시 그리고 대전 광역시 유성구에 걸쳐 있는 높이 845m의 산이다. 1968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충청지역에서 계룡산은 대표적인 산이나 높이나 면적에서 최고나 최대는 아니다. 계룡산의 천황봉과 연천봉, 삼불봉을 잇는 능선이 닭의 볏을 쓴 용을 닮았다하여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최고봉인 천황봉의 높이는 해발 845미터이고 계룡산 전체면적은 65.335km2이다. 계룡산 기슭에는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유명한 사찰이 있으며, 국어교과서에 소개되었던 남매탑이 있다. 계룡산의 남쪽 지역인 신도안은 조선 왕조 개국 직전 도읍 후보지로 꼽히기도 했다.
백제시대에는 계산(鷄山), 계람산(鷄籃山)으로 불렸다. 계룡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당대(唐代) 장초금(張楚金)이 지은 <한원(翰苑)>이라는 책의 기록으로 ‘괄지지(括地志)’ 부분에 ‘國(百濟)東有鷄籃山’(백제의 동쪽에 계람산이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신라에서 계람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미루어 계룡산이 계산 또는 계람산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의 하나로 중요시되었다. 신라는 국가의 제사를 대사, 중사, 소사로 분류하였는데, 계룡산에서 지내는 제사는 중사에 해당되었다. 이후 이 신앙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전해져 내려왔다. 이 제사는 신원사의 중악단에서 지내져왔다.
계룡산의 계룡산성은 나말선초인 9세기 중엽에 축조된 산성으로 연천봉, 관음봉, 쌀개봉 능선을 거쳐 서쪽으로 이 산들의 2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지점까지 산 능선을 따라서 쌓았으며, 3.5km의 길이에 달한다. 계룡산의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미루어 후백제가 처음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계룡산에 대한 내용은 다음 위키백과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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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에서 보이는 계룡산 동학사.
시작은 갑사에서 했다. 동학사와 달리 번잡하지 않아 좋다. 지금은 사찰에 별 관심도 없지만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구에서 꼭 삥 뜯긴 것 같아 갑사는 내려올때 잠시 들려보기로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산에 올라보면 왜 이곳의 지명이 계룡산이 되었는지 알게 된다.
누구는 가을엔 단풍이라 하는데 난 누가 뭐래도 가을은 하늘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을 하늘"
연천봉 고개.
여긴 관음봉 고개
관음봉 고개.
아래 동학사와 멀리 대전시 유성구가 보인다.
계룡산 관음봉.
나무 뒤에 작게 산객이 보인다.
가운데 계단이 폰화면에서도 보이려나 모르겠다.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 계단의 압박!~
중간 중간 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나무 뒤로 보인다.
왼쪽에도 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보인다.
정상 부근을 휘감고 있는 계단.
멀리 대전의 유성구가 보인다.
실제로 보면 정말 쥑이는 그림인데~ ㅜㅜ
삼불봉 정상에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질 못하고 그냥 찍어왔다~
틈사이로 난 길과 계단이 보인다.
삼불봉 고개
갑사까지 내려왔다.
갑사(甲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계룡 갑사라고도 불린다. 백제 27대 위덕왕 3년(556년)에 혜명대사가 중건하였다. 그 뒤에 의상이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증수하여 그 규모가 커졌다. 경내에는 대적전, 부도, 철당간지주 등의 보물과 군자대, 용문폭포 등의 비경이 있다. 동구의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감을 주며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가을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보로는 천근 범종과 《월인청강지곡》 목각판 등이 있다.
백제 이래 풍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고찰로서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로 발전한 것은 백제 멸망 후의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 및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였고 후에 신라의 의상대사는 당우 천여 칸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다. 임진왜란때는 영규대사를 중심으로 왜군에 항거하는 승병궐기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갑사는 조선 선조 30년(1579) 정유재란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하여 한꺼번에 소실되어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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