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생김새의 기이함은 월악산 주봉을 "영봉"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신령스러운 봉우리', '신비로운 봉우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월악산이 처음부터 월악산이라고 불렸던 것은 아니란다. 삼국시대에는 월악산의 정상인 영봉에 걸친 달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여'월형산'으로 불리다가 고려초기에는 '와락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산행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다는 동창교에서 오르는 코스인데 거리가 4.3km에 소요시간은 3시간 이라는데 대체 이 시간은 누굴 기준으로 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건 난 훨씬 더 걸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간과 거리는 편도이다.
송계리 하늘계곡펜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면 월악산 영봉 입구가 안내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하산은 내려오다가 송계 삼거리에서 마애봉,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여 508번 지방도를 따라 주차가 되어 있는 곳까지 조금 더 걸어 올라갔다. 거리는 좀더 긴 것 같고 힘든거야 아무렴 올라갈때만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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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영봉코스 (동창교) 안내가 되어 있다.
이제 시작이네 살살 올라가 보면 될 것이다.
길이 만만치 않다. 월악산은 특히 하산할때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으니 이정표에 눈이 많이 간다.
계단도 만만치 않다.
바위 옆의 철재 계단의 압박이 대단하다.
월악산 영봉 표지석.
가운데 헬기장이다.
위 사진보다 좀 멀리 보이네~
약간 거리를 둔 영봉이다. 맨위에 계단과 전망대가 보인다.
위 사진에 보였던 그 작은 네모의 헬기장에서 본 영봉의 자태.
이름 그대로 영봉은 올랐을때 보다 멀리서 바라볼때 더 매력이 있는 듯 하다. 영봉 위로 작지만 계단과 전망대가 여전히 보인다.
멀리 충주호가 보인다.
좀더 가깝게 보이는 충주호.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덕주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15m쯤 되는 커다란 바위에 암각된 보물 406호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이 있으며 얼굴은 길고 풍만하며, 기다란 눈과 큼직한 코, 늘어진 턱의 모습을 보인다. 이 석불은 산 아래 미륵사지 석불입상과 마주보고 있다.
절 입구에 세개의 남근석이 있는데, 월악산의 형상이 여자와 비슷하고 예로부터 여산신령이 다스리는 땅이라 음기가 강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아낙네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고 하며 이곳이 남아선호 신앙이 깃든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가 있고 서쪽 언덕 산 밑에는 네기의 조선시대 부도와 장대석이 있다. 전설로는 이 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고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遊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덕주사 전방 약 2㎞ 지점에 있는 빈신사 터에는 보물 제94호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이 있다.
약사전의 약사여래입상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장인의 것이 아닌 신심이 돈독한 불자가 원력으로 소박하게 만든것이다. 아픈사람이 기도하고 자기 아픈 부위와 같은 부처의 몸을 긁어다 그 가루를 먹고 나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긁은 자국이 남아 있다.
이외에 대불정릉엄신주비라는 비석이 있는데 비문의 첫줄은 대불정주라 음각된 한자로 시작하고 105자로 추정되는 범문(梵文)이 기록 되었다. 고려후기 성행하던 수능엄경(首楞嚴經)에 있는 엄주(楞嚴呪)를 새긴 것으로 범문으로 된 비문이 현존하는것으로 유일하며 국보급이다.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위키백과-
덕주산성.
제천 덕주산성(堤川 德周山城)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1983년 3월 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는 석축산성이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단성의 기능을 지닌 이 성은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고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적군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또 조선 말기에는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둘레가 32670척(9800m)에 이르렀던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동문·북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은 동창으로부터 문경으로 통하는 도로에 무지개모양으로 만든 홍예문으로 되어있고, 좌우를 막은 석벽은 내외 겹축으로 길이가 100간이다. 덕주골 입구에 있는 동문은 남문과 비슷하며,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는 북문은 내외에 홍예가 있으며 홍예 마룻돌에는 태극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덕주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이 있는데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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