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남들은 수월하고 션하게 잘도 오르는 것 같다만 난 산에 오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타고난 저질체력에 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으로 폐기능이 70%만 작동한다는 진단을 받고도 겁 없이 틈만 나면 산을 찾아가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미쳤지!! 또 산을 오다니~ 이제 다시는 오나봐라" 하면서 불평을 입에 달고 산행을 시작한다.
옛날에 우리 엄마들이 그랬다고? 애기 낳을 때 그 고생에, 그 고통을 겪으며 다시는 애 안낳는다 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서는 또 낳는다고~
내게 마치 산이 그렇습니다.
오를 때마다 숨은 차 죽겠고, 다리는 또 왜 그렇게 저리고 천근만근인지 한걸음 옮겨 놓기가 죽기보다 더 싫다가도 막상 정상에 오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혼자 신이 나 죽는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리며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도 죽을 둥 살 둥 오르고나면 산은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자신을 찾아 준 이들에게 반드시 보상을 해준다고 믿는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물론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지리산을 찾았을 리는 없고 그전에 나지막한 산부터 살짝 살짝 다니긴 했다.
늘 혼자 다녔다. 타고난 저질체력 때문에 행여 뒤처져서 다른이들에게 폐가 될까 염려되어 그 흔한 산악회나 동호회조차 가입해 본적이 없다.
혼자서 그것도 이 체력을 가지고 지리산 천왕봉을 하루에 다녀오는 방법은 역시나 중산리 계곡 탐방로가 가장 적당하고 여러곳을 검색해 봐도 가장 빠르게 천왕봉에 오르는 길이라고 한다. 중산리 계곡을 출발해서 칼바위 그리고 장터목 대피소와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다음 법계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아침 일찍, 아니 새벽이지, 그 새벽에 산에 오르려면 근처에 가서 하룻밤 자거나 서울에서 전날 밤에 출발하여 새벽녘쯤 도착해서 바로 산에 오르는 수밖에 없는데 꼭 지리산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할 때 대게는 이 방법을 택하여 시간과 경비의 절약을 꽤하곤 했다.
물론 몸이 좀 피곤하고 어느 때는 후회 한 적도 있다.
하루 일찍 가서 근처 여행도 좀 하고 하룻밤 묵고 산에 오르면 좋을 텐데 평일이고 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가 많다.
밤새 죽어라 달려 내려가 꼭두새벽부터 산에 오르려니 안 그래도 저질체력에 힘이 든다.
그래도 언젠가는 남들처럼 지리산에 올라 일출도 좀 보고 무슨 대피소 같은데서 하루 묵어가며 종주를 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품고 있는데 언제쯤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혼자서 이렇게 이산 저산을 다니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다녀 온 것을 보면 지리산이고 설악산이고 종주의 희망이 영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다시피 지리산은 1915m이고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 그러고 보니 육지에선 제일 높다는 상징성도 있고 그 장대함에 사실 오르기도 전에 주눅 먼저 들기도 한다.
중산리 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칼바위~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법계사~다시 칼바위~중산리 탐방안내소 이렇게 지도상으로 12.4km, 소요시간 9시간, 난이도 중, 이렇게 나오긴 한다. 소요시간이 9시간? 대체 누가 걸었고 누가 시간을 쟀기에 9시간 밖에 안걸리나 궁금은 하다. 솔직히 몇 시간이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9시간보다 훨 많은 11시간은 걸린 듯싶다. 시간은 둘째 치고 그나마 살아서 두발로 걸어 내려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두고두고 하긴 했다.
이제 그만 떠들고 슬슬 아니, 쎄가 만바리 빠지게 올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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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나 신문에서 한번씩 나오던 장면들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처음 마주하는 지리산 계곡.
지리산답게 출입문의 이름에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칼바위. 칼처럼 생겼다고 그렇게 지었나 보다. 내려올 때 한번 더 만나게 되는데 그땐 정말 반가웠다.
출렁다리 비스므리 한 것도 있고 아직은 콧노래도 가끔씩 나오고 살아 있다.
곧 가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 늘 그렇지만 가을은 우리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오는 것 같다.
계단 앞에만 서면 난 작아지는 느낌이다. 여기까지 콧노래 끝, 게거품 시작.
잎새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가을은 산을 덮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계단도 이런 계단은 오를만 하다. 그래야 잠깐 이지만~
돌들좀 가만히 두지~
유암폭포. 산길을 죽을둥 살둥 올라와서 겨우 만난건데 아직도 갈길이 멀다.
산에서 하늘 보이면 뭐 다 올라온거 아닌가 싶은데 역시 지리산이라 택도 없다.
많이 왔다. 이 장터목까지만 가면 사실 다 올라온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산에선 정상 표지석 보기전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여기서 느꼈다.
힘들어 죽을꺼 같을때마다 이런 그림하나 쓰~윽 내밀어 보여주며 어여 올라가라 한다.
찍을라고 해서 찍은건 아니고 나중에 보니 이렇게 구름이 특이하게 나왔다.
가니 못가니, 헥헥 거리면서도 이렇게 장터목 대피소까지 올라왔다. 좀 살 것 같다.
이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금방인줄 알다. 천왕봉까지 1.7km이니 여기까지 온 거리를 생각하면 금방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중간에 제석봉도 있고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지금부터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바람에 힘든건 나중에 알아챘다.
보기에도 션~ 하다.
제석봉을 향해 숨을 헐떡이고 가고 있는 중이다.
올라오면서 아주 용을 쓰며 헥헥거리고 올라와서 그런지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보이시려나~ 지리산 천왕봉이~ 손 내밀면 잡힐 것만 같은데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제석봉. 천왕봉(天王峰, 1,915m)과 중봉(中峰, 1,874m)에 이어 지리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높이 1,808m이다. 봉우리 근처에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석단이 있고, 그 옆에 늘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명당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제석봉 일대 약 33만㎡의 완만한 비탈은 고사목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무 없이 초원만 펼쳐져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정상에서 약 0.7km 떨어진 곳에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천연암굴인 통천문(通天門)이 있고, 통천문에서 0.4㎞를 더 가면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이르게 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제석봉 [帝釋峰] (두산백과)
하늘로 통한다는 뜻의 통천문.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제 정말 천왕봉에 한발 다가서나 보다. 그래도 천왕봉까지 빨리 가고 싶진 않다.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힘도 힘이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며 한껏 즐기며 가고싶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고사목이 좀 많다. 그래도 이렇게 당당히 서서 나를 기다려준 것만 같아 고맙고 아주 오래도록 이 자리에 서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천왕봉이니까, 천왕봉이라서 볼 수 있는 하늘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 왔다. 드디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정상석의 앞면과 뒷면.
아쉬움에 정상석 한번 더 둘러보고 이제 내려 간다. 법계사 방향으로~
남강의 발원지
개선문.
법계사. 여전히 내려온 길 보다 내려갈 길이 더 많이 남았는데 왠지 다 온 듯한 기분은 왜인지 모르겠다.
망바위.
지리산을 대표해서 배웅 나왔나보다. 잘 가라구~
다 내려왔다.
한참을 망설이다 지레 주눅이 들어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한 듯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다. 남들은 뭐 그게 그래 큰일이냐 할런지 몰라도 내겐 나름 의미가 있었던 산행이었다. 참 대견스럽고 뿌듯하다. 산위에서 펼쳐진 전경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었지만 결국은 내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이런날은 내게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다.
특별히 맛있는 걸 먹거나 괜찮은 잠자리에서 푸욱 자게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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