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땅을 지나다 차창 밖으로 월출산 자락이 드러나면 숨이 멎는 듯 하다.
월출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보는 산’에 가까웠을 것이었다. 사방 백 리에 큰 산이라고는 없는 너른 평원 위에 거칠고 험준한 바위들로 솟은 장대한 돌산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가득하다. 경사를 누이고 비탈에 밧줄을 매고 거친 구간마다 철제 덱과 구름다리를 놓은 지금도 아찔한데,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이 금강산이며 지리산 같은 큰 산을 수없이 유람하며 산행기를 남겼음에도, 월출산에 대해서는 먼발치에서 경탄한 기록이 전부이고 산행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남 영암 월출산의 이름은 자그마치 열셋이나 된다. 하나의 산에 이렇듯 이름이 여럿이다. 영암 쪽에서 보면 달이 이 산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했고, 산 위로 뜬 달이 보배같다고 해서 ‘보월산(寶月山)’이라고도 불렀다. 화개산, 금저산, 천불산, 지제산, 월산, 낭산 등도 다 월출산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었다.
월출산의 위세는 과거에 더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규모가 작아서인지 전국 24개 국립공원 중에서 인지도가 가장 낮은 축에 들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이 산의 명성은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월출산을 일러 ‘본국 밖에서는 화개산이라 칭한다’는 문장이 있다. 산 이름에 ‘빛날 화(華)’에 ‘덮을 개(蓋)’란 이름을 쓴 건 문수보살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구름이 월출봉 정상 위에 떠서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남긴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한다”는 글도, 김시습이 월출산을 찾아 “호남에서 제일 가는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 뜨지 않고 산간을 오르더라”고 쓴 것도, 다산 정약용이 월출산의 산정을 묘사하며 ‘높다란 뿔 하나가 창공에 꽂혀있어’라고 쓴 것도 모두 산 ‘속’이 아닌 산 ‘밖’에서 쓴 글이었다. 월출산이야 말로 오르거나 유람하는 산이 아니라, 아찔한 위용으로 서서 푸른 밤마다 달을 낳는 신령스러운 산이었던 것이었다.
월출산이 품고 있는 ‘영암’이란 마을 이름도 스스로 움직이는 바위(動石)를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해서 ‘영묘할 영(靈)’ 자에 ‘바위 암(岩)’ 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바위도, 그 바위가 이룬 산도, 그리고 그 산을 거느린 마을도 모두 범접할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했다는 뜻이다.
월출산은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평야와 나주평야의 너른 들에 우뚝 솟아 있다. 영암 땅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목포에서도, 화순에서도, 나주에서도 월출산은 보인다. ‘월출산에 간다’는 건 두 발로 산을 오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월출산은 산에 발을 들이기 전에 눈으로 먼저 만나는 게 순서다.
월출산은 멀찌감치서부터 제 존재를 드러낸다. 방향을 가늠하거나 지도를 펴고 확인해볼 필요도 없다. 저지대의 평야 위에서 험준하게 솟구친 비범한 산세를 만난다면 그게 바로 월출산이다. 남도 땅으로 접어들어 달리다가 홀연히 기암의 산 하나가 나타나 ‘저게 월출산인가’ 싶다면 십중팔구 맞다. 산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도 먼발치서 산의 형상을 발견하고 차츰 산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면 이미 월출산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전남 장성의 국도에 접어들자 아득하게 월출산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거리를 가늠해보니 자그마치 70㎞ 밖이다. 그때부터 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월출산의 모습은 달라졌다. 남쪽으로 시야가 트일 때마다 월출산은 기기묘묘한 수석처럼 떠올랐다.
영암 땅에 들어서면 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근육질의 화강암 바위 앞에서 입이 딱 벌어진다. 암봉 사이로 봉긋하게 솟은 해발 809m의 천황봉이 아득하다. 아직 봄기운이 당도하지 않은 까마득한 산정에는 아침마다 나뭇가지 끝에 얼어붙은 상고대가 순백으로 반짝인다. 이즈음 월출산은 수많은 암봉이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번들거린다. 얼어붙은 바위들이 녹아내리는 중이라서 그렇다.
월출산을 찾아 영암 땅에 당도했다면 뒤로 물러서서 산의 지세부터 봐야 한다. 월출산에 들어서기 전에 마치 섬의 실루엣으로 평야 위에 떠 있는 산의 형상을 만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영암에는 월출산과 마주 보는, 월출산 높이의 딱 절반쯤 되는 백룡산이 있다. 백룡산의 발치인 덕진면 운암리의 송석정 마을에 ‘덕진 차밭’이 있다. 1979년 순수 재래종 차나무를 심어 조성한 제법 너른 차밭이다. 차밭의 연둣빛 새순은 아직 멀었지만 덕진 차밭에서 봐야 할 것은 차밭이 아니라 그 너머로 펼쳐지는 월출산의 산세다. 차밭 너머로 운암리 일대의 들녘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멀리 월출산이 그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다. 산 하나의 형상이 그림처럼 또렷하다. 산에 오르기 전에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풍경이다.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에는 소사(小祀) 터의 자취도 남아있다. 소사란 ‘작은 제사’를 말하는데, 신라 때 명산 대천에 제사를 대, 중, 소로 나눠 지냈다. 경주 부근의 명산에서는 큰 제사(大祀)를,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 등 오악에서는 중간 제사(中祀)를 지냈고, 월출산 등의 명산에서 작은 제사(小祀)를 지냈다. 옛 사람들이 이 아찔한 벼랑 끝의 천황봉까지 올라와 제사를 지냈던 건 그만큼 기원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아찔한 천길 벼랑으로 우뚝 솟은 산은 유람이 아닌 종교와 기원의 이름으로 비로소 다가설 수 있었다. 월출산 절집에서의 구도 수행, 제사의 신묘한 영험은 이렇게 닿기 힘든 곳이어서 가능했을 것이었다. 이렇듯 목숨을 내걸다시피 가야 닿을 수 있는, 두려움과 고통의 끝에서 자신의 소원이 하늘에 닿는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을 것이었다. -출처 월간 산-
등산코스는 천황사 탐방안내소- 천황사삼거리- 구름다리- 사자봉- 경포대능선 삼거리- 통천문삼거리- 천황봉- 바람재삼거리- 구정봉-억새밭(미황재)-도갑사 까지 거리가 8.5km에 시간이 6시간 10분으로 안내되어 있다. 늘 그렇지만 그 소요시간을 한번도 믿어 본 적은 없다. 난 한 8시간 걸린 듯 하다. 물론 중간중간 사진을 핑계로 늦장을 부린 이유도 있다.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
타고난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위의 종주코스를 넘어서 도갑사까지 갈 것이다.
처음 만나는 천황사. 저 계단을 올라 대웅전의 왼쪽으로 부터 산행이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가 정상 같지는 않고 왼쪽에 내비친 달이 참 의외스럽다.
평지에 우뚝선 월출산답게 조금만 오르면 남도의 평야가 드러난다.
그만큼 오르는 내내 조망이 쥑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기암을 타고 오르면서도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구름다리.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올라야 하는 계단이다.
구름다리 위에서의 조망이 션하다.
월출산에 비친 구름다리의 그림자.
구름다리를 건너기 전에 잠시 쉴 수 있는 정자가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오면 이 그림을 볼 수 있다.
산위의 풍력 발전기들~ 구름다리를 건너서 보이는 그림이다.
구름다리는 시작이다. 구름다리를 건너서 올라온 계단의 압박.
구름다리를 건너서 올라야 하는 계단이다. 거의 수직에 가깝다.
조망만 본다면 정상에 오른 듯 싶지만 아직 멀었다.
산과 들 그리고 하늘.
가야산의 만물상에 뒤지지 않는다.
경포대 능선 삼거리.
지금 말이 없는 건 힘들어서다.
멀리 영암 읍내가 보인다.
통천문, 이런 문은 대게 정상 근처에 있다. 다 왔다는 의미?
월출산 정상석. 힘들어 디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참 잘 왔다는 생각과 살면서 산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된 첫번째 산일 것이다.
영암 시가지가 보인다.
이런 이정표는 월출산에서만 본 듯 하다.
월출산의 조망은 이렇게 숨이 멎는 듯 하다. 가운데 능선 길이 보이고 이제 이리로 가야 한다.
갈길이 멀다. 온길의 거의 두배가 넘는다. ㅜㅜ
천왕봉에 인사를 건네고 도갑사 방향으로 향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 능선길이 다가온다.
월출산 정상이 보인다. 저 계단을 내려왔다.
가운데 난 길이 왠지 정겹다. 저 길을 따라 아직 갈 길이 멀다.
멀리도 왔다 했더니만 겨우 600m 왔다.
멀리 월출산 정상과 계단이 아직 보인다.
정상이 점점 멀어져 간다.
이렇게 계단길을 돌아 돌아서 가야 한다. 그림 저 끝까지~
월출산 정상의 위엄!!
왼쪽에 우뚝선 월출산 정상.
정상이 저렇게 멀게 보이니 많이 왔다.
바위 위의 산객이 보이나 모르겠다.
억새밭까지~ 참 힘들게 왔다.
헐~ 반쫌 더 왔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守眉禪師碑)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한 석비이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했으며, 높이 517cm 규모의 석비이다. 도갑사 부도전(浮屠殿)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2004년 1월 2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95호로 지정되었다.-출처 위키백과-
도갑사가 보이니 이제 다 왔나 보다. 정말 다리 아프다.
도갑사 대웅전, 뒤로 월출산이 보인다.
거의 8시간이 걸렸나 보다. 산이 높아 힘든게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하며 많이 걸었다. 8.5km라 하는데 실제는 더 된 듯 하다. 이제 다시 절에서 내려가서 택시를 타고 차가 있는 천황 탐방 안내소까지 가야 한다. 도갑사 입구에서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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