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부여 여행을 시작하면서 부소 산성을 비롯하여 낙화암 그리고 관북리 유적까지 둘러 봤으면 이제 부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림사지와 그 안에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러 간다.
정림사지는 부여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부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 정림사지에 들어서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허허 벌판에 건물 한채와 쌩뚱 맞게 서 있는 정림사지가 전부이다. 뒤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이 정림사지 5석탑이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정림사지 5층석탑 옆에 정림사지 역사 박물관이 있으니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둘러보길 권장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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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소재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높이는 8.33m이다. 정림사는 사비의 시내 한가운데 있던 중요한 절이었다. 1963년 12월 20일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다.
정림사지 박물관. 주차장에서 정림사지로 가는 길에 있으니 들어갈때든 나올때든 꼭 들어가 보길 권장한다.
정림사지 5층석탑과 정림사지. 잔디에 보면 기단석이 남아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웠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놓았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 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는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세련되었다. 익산(益山)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개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한국 석탑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탑 각부의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된 백제 석탑의 형식을 정비한 이 탑 이후 백제 석탑의 형식은 다소의 세부 변화는 있었으나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정림사지오층석탑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정림사명(定林寺銘)이라는 글씨가 들어간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다.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는 당(唐)의 소정방이 백제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이다. 초층탑신에 새겨진 비문을 줄여서 당평제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은 백제를 정벌했던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의 공을 기록했다 하여 소정방비라고도 부른다. 능주장사 판병부에 있던 하수량이 글을 짓고 하남사람 권회소가 글씨를 썼다. 비문의 제목은 전서로 새겨져 있다. 비문에 따르면 의자왕, 태자 융, 효, 인 및 대신과 장군 88인, 백성 12,807명을 당나라의 수도 낙양으로 압송하였다고 한다.
탑 건너에 부여 중학교와 백제 초등학교가 있다.
박물관 내부에 있는 정림사지 디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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