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을 처음 찾은 것은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이 남원 바로 아래 있는 주천에서 1코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겠다고 마음 먹고는 남원을 찾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숙박을 위한 지나침이었지 남원에 대한 어떠한 호기심도 관심도 사실은 가지질 못했다.
남원하면 그저 광한루와 추어탕. 그것이 기억에 있는 남원의 전부이기도 하다.
광한루라는 유명한 명승지가 있음에도 남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은 광한루가 춘향전이라는 소설에 가려 있어 광한루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춘향전의 배경 이상으로 광한루를 기억해내지 못한 것은 그만큼 춘향전이 우리내 정서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광한루는 단지 춘향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라 역사속에 실존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밀양에 영남루가 있다면 호남에는 말그대로 호남 제일의 누각 광한루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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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이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길이 보이며 나무 사이로 수줍은 듯 숨어있는 완월정이 보인다.
[광한루원 입장료]
어른(19세이상 64세이하) : 개인 3,000원 / 단체 2,500원 / 할인(연계) 1,800원
청소년(13세이상 18세이하), 군인(하사이하군인,전의경) : 개인 2,000원 / 단체 1,500원 / 할인(연계) 1,000원
어린이(7세이상 12세이하) : 개인 1,500원 / 단체 1,000원 / 할인(연계) 700원
※ 단체는 30인 이상으로 동일목적, 동시입장 일행
※ 연계할인권은 춘향테마파크 당일 입장권 소지자에 한정
※ 무료입장 : 국가보훈대상자 및 참전유공자, 만 6세 이하 만 65세 이상, 관내 학교 현장학습, 장애인, 기타 시장이 필요하다 인정한 경우.
처음오는 사람은 이게 혹시 광한루가 아닌가 착각을 하게도 된다. 완월정이다.
완월정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완월정, 들여다보면 완월정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관리 사무소 방향 출입문.
나무사이로 영주각이 보인다.
영주각
용성지 의 누정편에 보면, '전라관찰사 정철이 요천에서 끌어온 물이 누앞을 좁다랗게 흐르고 있던 개울을 넓혀서 평호로 하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주위를 석축으로 하고 호중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하나에는 녹죽을 심고,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연정을 세우고 호중에 여러 종류의 꽃을 가득 심었다'고 되어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한주섬(漢州)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증보 남원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63년부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1965년에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청이 되었다.
영주각은 단층 누각 형태로 기단부는 화강석 장대석을 정밀 가공하지 않고 설치했으나 부분적으로 자연미도 보인다. 1층 하부의 석주는 화강석으로 일정하지 않은 방형으로 가공해서 초석받침위에 세웠고 초석위로 장귀틀과 동귀틀을 끼워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초석 위에 흠을 파서 귀틀장선을 끼웠다.
상층 우물마루에는 누간을 두지 않고 기둥에 흠을 파서 여모중방을 끼우고 머름을 낮게 설치하였으며 후면에 목조계단 5단을 설치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양서를 하나 내고 위에 쇠서를 구성하여 이익공의 형태를 만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웠고 주심도리와 주두에는 첨자를 끼웠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외진 기둥 주두위에 얹고 보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치며 종량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정은 연등천정으로 연목과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건물 네 귀의 추녀에는 활주를 받쳤고 기둥머리 이하에는 석간주 가칠하였고 상부는 모로 단청으로 마감되었다.
광한루를 만나러 가는 길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광한루.
광한루 앞에 오작교가 보인다.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
선조15년(1582)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춘향전의 절정은 아무래도 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도가 아닐까 싶다.
그 암행어사 출도는 변학도의 생일잔치가 있는날에 하게 되는데 그 전에 변학도의 생일 잔치에서 이몽룡이 시조를 짓는 장면이 나오고 이 시조를 본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장면은 춘향전을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에 남을 장면일 것이다. 이때 이몽룡이 지었던 시조를 첨부한다.
변학도는 운봉, 곡성, 정읍 등의 주변 고을 지방관들과 양반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인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자 이들은 양반답게 시조놀이를 하게 되는데, 변학도가 '고'를 운으로 띄워서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시조를 짓게 된다.이에 잔치에서 음식만 받아먹고 있던 이몽룡은 자신이 비록 거지꼴이지만 그래도 양반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자신도 시조를 지었다.
물론 이몽룡은 소설 속의 인물이므로 이 시조의 원작자도 춘향전의 작가일 수밖에 없다. 이몽룡의 모델로 거론되는 실존인물 성이성의 스승인 조경남이 쓴 <속잡록>에 명나라 장수 조도사(趙都司)가 지은 光海亂政譏詩(광해난정기시)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시가 금준미주가와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면 시를 이루는 한자의 반 정도가 아예 똑같다.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 천인혈
(금빛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
옥반가효 만성고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백성의 기름을 짠 것이니,)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락시 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 원성고
(풍악소리 높을 때 원망소리 높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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